밤늦게까지 드라마를 보고 자느라 그랬는지,
오늘 아침 일어나는 몸 상태가 평소보다 무거웠어.
창 밖을 내다보니, 오늘도 여전히 우중충한 하늘과
달리 반갑지 않은 비가 도시 전체를 적시고 있었지.
그래도 예전만큼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것 같진 않아.
한국에 있었던 6개월 동안의 광합성 덕분일까? 내
안으로 따뜻한 비타민 D를 여전히 품고 있는 가봐.
오늘은 밴쿠버에 다시 온 후로 가장 생산적인
하루였어. 잔뜩 쌓아뒀던 일들을 왠지 오늘까지
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거운 몸이지만 힘을 쥐어짜게 되더라고.
아마 그건, 오늘이 11월의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 거였을지도 모르겠어.
서울에서 산 디지털 프린팅이 독특하게 들어가
있는 네오프린 소재가 믹스된 니트 터틀넥에
즐겨 입는 검은색 통바지와 레깅스를 겹쳐 입고,
레인코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지. 생각보다 비가
많이 오더라구. 안경에 빗물이 다 튀는 바람에
화장이 지워지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지 뭐야.
왜냐면 오늘은 영주권 갱신을 위한 사진을 찍어야
했거든. 서류 준비를 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12월이 되기 전에 다
해치워버려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섰어.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순차적으로 잘 진행된 거 같아.
서류를 보내고 나니 미친 듯이 허기가 몰려왔어.
중요한 서류라 그런지 나름 긴장을 했던 모양이야.
우편물을 보낸 드럭스토어와 같은 블럭에 있는
일본식 라멘집에서 점심을 해결했지. 사실은
베트남식 쌀국수가 먹고 싶었는데 자주 가는 곳이
엄청 바쁜 거 있지. 역시 어느 식당이든 12시는
피해야 된다니깐. 이 일본식 라멘집 집 사장님은
소셜미디어 이벤트를 통해서 안면을 텄는데,
그 이후로 내가 가기만 하면 돈을 안 받으셔.
너무나도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하더라. 역시 내 성격 상 받은 것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관념이 뿌리 박힌 건 어쩔 수 없나 봐.
먹통이었던 휴대폰을 다시 되살리고, 별다방에서
솔티드 캐러멜 모카 커피를 한 잔 시켜먹고서는
집 근처 동네에 위치한 또 다른 커피숍으로 향했지.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커피숍인데 알고 보니
오너가 새로 바뀌었더라고. 세르비아에서 이민 온
분들이 하는 곳이었는데 엄청 젊은 매니저가
인수했나 보더라.
평소 같으면 거기서 또 커피를 몇 잔 더 시켜먹고,
근처에 있는 꽃집에서 꽃 한 다발을 사 온다던지
하는 돈지랄을 마구 해댔겠지만, 다행히도
한국에서 잘 단련되어 온 덕분인지 흥청망청
돈을 쓰지 않고 있어. 집에 오는 길에 치과에 들러
예약을 하고, 카메라에 있는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이야.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하다 보면 끝이 보이겠지. 영주권 갱신 서류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내일은 벌써 12월이네. 한국은 이미 12월 1일이겠지.
역시 시간은 참 냉정하게도 묵묵히 흘러가는 것 같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하루, 한 달, 일 년이 엄청 길거나 짧게도
느껴지나 봐. 조만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어. 12월도 11월의 마지막 날처럼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길.
그럼 또 안부 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