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YUNIQUE Dec 01. 2021

2021년 11월의 마지막 날

늦은 밤 다이어리를 쓰고,

브런치에 들어와서 지난 기록들을 뒤적이다

‘11월의 마지막 날’이 통계 상위에 위치한 걸 발견했어.

<너에게 쓰는 편지> 폴더에 있는

단 하나의 글.


언제 쓴 글이었지…?

기억이 안 나 되돌아보니

2017년에 쓴 글이더라.

시간 참 빠르다, 그치?

벌써 4년이 흐른 2021년,

11월 마지막 날.

네 생각이 나 이렇게 끄적여본다.


지난달,

같이 제주도 놀러 가자며 초대했을 때

한국에 가는 티켓을 바로 끊었었으면

지금쯤 제주도에서 재밌게 놀고 있겠지?

코로나 때문에 일상생활에

그렇게 큰 변화는 없는데,

여행을 자유자재로 못 간다는 거 하나는

참 아쉬워.


오늘도 밴쿠버는 비가 엄청 왔어.

작년은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이번 해가 유독 더 우중충해서

견디기가 힘들 정도야.

그래도 하루에 최소 30분씩 하는

요가는 꼭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


오늘은 친구들 선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직접

디자인한 걸로 레이저 커팅 기계로 만들어봤는데

파일 작업을 제대로 안 해서 다 망쳐버렸어.

완벽주의자 성향 탓인지 실패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는 건 여전해.

나 자신한테 화도 나고 그랬는데,

집에 와서 다시 파일 다듬고,

망하는 데서 배운다사고의 관점을 바꾸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지더라고.


저녁으로 어제 필 받아서 만들어 놓은

크림 버섯 수프를 데워서 먹고, 넷플릭스에서

<14 Peaks: Nothing Is Impossible>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는데,

뭔가 찡하더라.

네팔 사람들이 모여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14 곳을

6개월 6일 만에 정복하는 이야긴데,

처음에는 ‘저런 짓을 왜 하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다가,

나중에 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기획한 사람이 마지막에

“지금,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뭔가 무겁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더라고.


나는 지금껏,

내가 원하는 것을 좇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가끔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이랄까,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해.

어렸을 때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거늘,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이 커지는 걸까?


저번 주말에는 매년 밴쿠버 연말에 열리는

‘Celebration of Lights’라고

크리스마스 불빛 점등을 해놓은 축제에 다녀왔는데,

같이 간 애 하나가 MBTI를 완전 꿰뚫고 있더라고?

걔가 보낸 링크로 테스트를 다시 해봤는데

ESFP가 나오더라?

대학교 때 했던 MBTI에서는 ESTJ였는데,

캐나다 오고 나서 성격까지 바뀌어버렸나 봐.


가끔은 내가 왜 이 남의 나라에 와서

여전히 모국어가 아니라 불편한 언어를 쓰면서

굳이 힘들게 살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도 있어.

그중에서도,

너랑 멀리 살아서

소소한 일상을 나누지 못하는 게

제일 아쉬워.


그래도 지금까지 해 온 선택들이,

힘들게 한 발 한 발 걸어온 길들이,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겠지?

2021년 봄/여름 동안은 나름 큰 프로젝트들이

많이 들어와서 바쁘게 지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그래도 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곧 볼 수 있기를 기다리며.





- 사랑하는 너의 베프가

매거진의 이전글 11월의 마지막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