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흑백요리사: Culinary Class Wars>는 최근에 본 프로그램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흙수저'에서 기안한 듯한 흑, 백 수저로 나눠진 컨셉에서부터 착시 현상을 떠오르게 하는 프로그램 로고 디자인,어마어마한 규모의 세트장과 조명, 마치 바둑을 연상시키는화면 효과, 40명이 동시에 요리할 수 있는 화구를 갖춘 조리대, 요리의 방과 편의점 셋업, 현란한 카메라 워크 및 깔끔한 편집까지. 기획부터 완성까지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쇼였다.
개인적으로 샌프란시스코의 팝업 식당을 통해 인스타에서 팔로우를 하고 있던 배경준 쉐프님이 '원, 투, 쓰리'라는 닉네임으로 출연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더욱이 관심 있게 그분을 응원하며 몰입해서 보게 되기도 했다. 사실 지난 5월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분이 새로 오픈한 식당 '본연'에 가려고 했으나서울에서의 짧은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들르지 못했는데 이제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힘들게되어버렸다는 게다소 슬프기도 하지만... 버티기 쉽지 않은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여 자신만의 스킬과 스타일로 정정당당하게 경연하는 모습들에서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경연이 끝나고 승자가 밝혀진 후에도 <흑백요리사>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미슐랭 식당'에 대한 궁금증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듯한 요즘, 때마침 밴쿠버에서 미슐랭 식당을 선정하는 세레모니가 열렸다. 캐나다 내에서는 2022년부터단 두 도시, 토론토와 밴쿠버에서만 미슐랭 식당을 선정해오고 있는데, 밴쿠버에서는 메트로 밴쿠버지역인 버나비, 노스밴쿠버, 코퀴틀람, 뉴웨스트민스터, 써리, 랭리. 아보츠포드, 메이플릿지 등 근교 도시들을포함하지 않는, 순수 'City of Vancouver'에서만 수상자가 결정된다. 사실 광역 밴쿠버 도시들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밴쿠버 도시 규모 자체는 그리 큰 편이 아니지만, (돈을 내고) 미슐랭을 초대하는 주최자가 '밴쿠버 시'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제3회 밴쿠버 미슐랭 세레모니는 밴쿠버 컨벤션 센터나 페어몬트 퍼시픽 림 호텔이 아닌, 라이브 뮤직콘서트장으로 잘 알려진 곳인 그랜빌 스트릿에 위치한'코모도어(the Commodore Ballroom)'에서 열렸다. 평소 허름해 보이던 티켓팅 창구 입구에 화려한 빨강 커튼과 레드 카펫을 설치해 놓고, 미슐랭 스타 로고를 네온사인으로 밝혀두니 마치 다른 나라에 위치한 쇼장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마저들었다.
2024 밴쿠버 미슐랭 세레모니 레드카펫
본격적으로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번 미슐랭 세레모니에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베트남 식당 <안앤치: Anh and Chi>를 운영하는 친구의 잠입 시도 꼬드김에 넘어가 입구에서 뺀찌(?)를 맞지 않도록 커스텀 핑크 슈트를 빼어 입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도착하자마자 입장하고 있는에디터 분을 마주쳤고, 자연스레 인사를 하며 QR 코드스캔을스킵하고 곧장 행사장안으로 안내받았다. 들어가자마자 같이 여러 번 작업한 적이 있는 비디오그래퍼 및 촬영 감독인 마크와 크리스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고, 초대장이 없지만 무사히 들어온 나를 열렬히 환영해 주는 그들 덕분에 한결 마음 편히 즐겁게 이벤트를 즐길 수 있었다.
빨간 장미로 장식된 레드카펫을 밟으며 2층으로 올라와서 코트를 맞긴 후 우리를 맞이해 주는 것은 미쉐린 타이어맨이었다. 하얀색 지방층 혹은 마시멜로가 두텁게 쌓인 듯한 코스튬을 입고 한결같은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하며 포토월에서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절했던 미쉐린 타이어맨
행사장 안에는 내가 밴쿠버에서 가장 애정하는 식당 중 하나인 'Published on Main'과 AnnaLena, 49th Parallel Coffee Roasters, 그랜빌 아일랜드에 위치한 요리 학교인 Pacific Institute of Culinary Arts (PICA)에서 한 입 거리와 음료를 제공해 주었다. Published에서는 미슐랭 별모양으로오려낸 무(Watermelon Radish)에 캐비어와 크림치즈, 딜 허브를 올린 핑거 푸드를 준비했고, 49th Parallel 커피 로스터즈에서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크레마가 풍부한 커피 마티니 칵테일을 준비했지만 단연 돋보였던 것은 AnnaLena에서 준비한 입가심용 레몬젤리와 생 굴이었다. 바닐라를 첨가한 크림 거품을 올린 굴이 달콤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Watermelon Radish with Caviar, Dill, and Cream Cheese
Lemon Jelly as a Palate Cleanser
리셉션이 시작되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쇼호스트인 한국계 캐나다인인 Mijune Pak이 무대에 올라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밴쿠버 태생인 미준 님은 'Follow Me Foodie'라는 푸드 블로거로 시작하여 라디오 및 텔레비전에 출연해 왔고 'Top Chef Canada' 및 'Iron Chef Canada' 등 캐나다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슐랭을 주최하는 밴쿠버 관광 정부 기관인 'Destination Vancouver'의 대표님의 인사 말씀을 곁들인 후,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새로 생긴 카테고리인 Young Chef Award에는 일본 오마카세 쉐프인 Yoji Masuda가 수상했고, 바텐더 어워즈는 미슐랭 1 스타 식당 'Kissa Tanto'의 Fraser Crawford에게 돌아갔다.
사회자 Mijune Pak & Destination Vancouver CEO, Royce Chwin
다음으로는 '가성비 좋은 식당' 카테고리인 '빕 구르망(Bib Gourmand)' 시상이 이어졌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태국 식당 'Zab Bite'과 사우스 그랜빌에 오픈한 'Gary's'가 새로 더해졌다. 마지막은 1 스타 식당 시상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2 스타나 3 스타 식당이 없는 걸 보면 안성재 쉐프의 '모수'의 3 스타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알 수 있다.)개인적으로일본 정통 규수 스타일의 오마카세 식당인 Sushi Mahana는 2 스타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노스밴쿠버에 위치한 탓에 심사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 다소 안타깝다. 광역 밴쿠버 혹은 BC주 전체로 시상폭이 넓혀진다면 관광객 유치 및 레스토랑 다양성 확보를 위한좋은 발걸음일 듯하다.
빕 구르망 수상자들 단체 사진
1 스타 수상자들 단체 사진
Published on Main의 쉐프 오너 거스(Gus Stieffenhofer-Brandson)
바텐더 어워즈 수상자인 Fraser Crawford, Kissa Tanto 팀 (Joel Watanabe & Tannis Ling)
시상식은 밴쿠버 가수 'Dawn Pemberton'의 멋진 밴드 공연으로 끝이 났고, 이 밤의 끝을 놓지 못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Kissa Tanto 팀이 새로 오픈한 칵테일 바 Meo에서 애프터 파티를 하며 성대한 잔치의 막을 내렸다.
이번 밴쿠버 미슐랭 식당 선정 세레모니에서 대체적으로 컨템포러리 및 일식당이 수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년에는 '호랑이 식당'이나 '주막'같은 한국 식당이 수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사심 가득한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