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베프들과 함께 떠난 필리핀 세부 근교 여행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문득 생각이 나 이 노래를 찾아보니 2001년 작이란다. 벌써 16년 전이다. 되새겨보니, 2001년은 어떻게 보면 내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내 인생에 평생 함께 할 친구들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만났기 때문이다. 같은 반, 같은 짝, 앞 뒤로 앉은 우연은 '포트리스'라는 게임을 통해 숙명처럼 이어졌다. 사소한 것에도 배가 터질 것 같이 웃고, 걸그룹의 댄스를 같이 연마하자며 뭉쳐놓고 수다만 떨다 집에 오고, 노래방에 가서 '벌써 일 년'을 함께 떼창하고, 고3이 되던 시기에 댄스 학원에 등록하고, 유럽 여행을 가서 거리에 앉아 닭을 뜯고, 다신 안 볼 것 처럼 울고 불고 싸우고, 각자 다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각자 다른 도시에 살아도, 우리는 여전히, 16년 후에도, 친구 사이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은 우리가 유럽을 여행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마침 다른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한국을 방문할 계기가 생겼던 차, 나는 친구들에게 여행을 가자며 떡밥을 던지기 시작했고, 다행이도 나의 친구들은 나의 그런 떡밥을 덥썩 물어주었다. 해양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한 친구의 제안에, 우리는 필리핀 세부 행을 결심했다. 비록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고 밴쿠버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친구들과 재회하는 순간 19시간의 피로도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필리핀의 저렴한 마사지가 한 몫하긴 했다.)
사실 내게 필리핀은 별 관심 없던 나라였다. 하지만 세부에 도착 한 뒤 두 시간 남짓 배를 타고 도착한 팡라오(Panglao) 섬은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었다. 여러 사이트를 뒤져 발견한 리조트는 웹사이트에 있는 것과 판박이였고, 대형 리조트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나의 바램을 100% 만족시켜주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투숙객이 적어 우리만의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고, 우리가 원하는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터라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돌고래를 감상했고, 친구들은 스노쿨링을 하는 동안 나는 산미구엘을 열심히 드링킹했으며, 백사장에서 직접 구운 전복을 먹고, 바닷가에 널브러진 불가사리 들을 신기해하면서,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감사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어디에 가느냐 보다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너희와 함께여서."라고.
멀리 사는 나 때문에 자주 보진 못 하지만, 또 몇 년이 지나, 다시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