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그리고 거짓말

by 파레시아스트

어머니의 직장암 수술은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걱정했던 일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고

수술이후의 일들은 다시 어머니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지고

자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난번 종합검진에서 폐에 종양 소견이 있었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기 위해 오늘은 폐CT를 촬영하는 날이다.

이번 내원은 가까이 사는 내가 모시고 다녀오기로.

병원 모시는 것들은 형님과 나의 몫이다.

누나들은 그렇게 정리를 한 것 같다.

'굵직한 일들은 아들들이 해라. 작은 것들은 우리가 할테니..'

나는 누나들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한다.


간만에 어머니와 드라이브다.

어머니는 내차를 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셨다.

당신의 신발에 묻어 옮겨지는 흙이 미안해

차를 타기전에 신발을 털고 타시는 분이다.

이제 내차도 오래되어 어머니처럼 늙었다.

다리힘이 없어서도, 총명함도 사라져서 그렇겠지만

이제 발을 털고 타시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진흙을 딛고 타셔도. 감사할 뿐이다.


대구를 가는 내내 바깥 세상을 신기한 듯 보신다.

산불로 새까맣게 탄 산들이, 새로 놓인 도로가, 들녘 비닐위로 올라 온 마늘싹들이..

뇌출혈로 말이 불편한 어머니와 나는 1시간 남짓 시간동안

많은 대화를 했다.

어쩌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둘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것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병원에는 형수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직장에 다니는 형님은 형수님을 대신 보냄으로서 도리를 한 셈이다.

예약된 진료는 금세 끝이났다.

점심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형수가 내게 흰봉투를 내민다. 차비하라고 형님이 준 것이다.

"나도 아들입니다. 형수님"

나도 아들이니까..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 차비 받을 일 아니다라는 의미다.

한번 내민 돈을 다시 주머니도 돌려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에 손사레 치는 걸 일찌감치 포기하고 받았다.

그게 서로 편하다.


형수를 들여보내고, 어머니는 고모댁으로 가자고 했다.

고모집은 집으로 가는 길에 있다.

어머니보다 네살 아래인 고모는 벌써 오래전부터 의성 시골에 홀로 살고 계신다.

두분은 사이가 좋다.

열아홉에 가난한 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을 와 어린 고모들과 삼촌을 모두 키워내고

살림을 털어 시집까지 다 보냈다고 하니 그 오랜 세월 정이 얼마나 깊어져 있을지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의성읍을 지나 굽이굽이 시골길을 따라 한참이나 들어갔다.

고모집은 이번이 두번째다. 내가 아주 어릴때 겨울방학 기간에

형과 둘이서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참 지금도 생생하다.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45년전 기억과 눈앞의 풍경을 겹쳐본다.

'그래... 그랬었지..'

고모가 구부정한 자세로 마당에 서 있다. 우리의 차가 들어오는 걸 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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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뚝 떨어져 있는 고모집은 평소같으면 고요할 지경이다.

오늘은 포크레인 한대가 그 정적을 뭉그리고 있다.

지난달에 만났다면서도 어머니 눈엔 눈물이 고인다.

세월 풍파로 굽은 다리와 굽은 손가락의 노송 두그루는 거칠어진

손을 서로 부비고 또 부빈다.


고모는 똑 부러지는 분이다.

옛날부터 그랬다. 말도 잘하고 욕도 잘해서 웬간해서는 당해 낼 사람이 없다.

다리 수술을 해서 유모차 비슷한 걸 지탱해서 다니셔야 하지만

여전히 말씀은 쨍쨍하다. 나는 그 정정함이 다행스러웠다.

그 옛날 한옥집은 한번 수선을 한 덕에 실내가 넓어져 있었다.

이 집에 최근 에피소드가 있었다.

'깡촌캉스' 팀이 머무른 곳이 바로 고모댁이었던 것.

얼핏 들은즉은, 고모 조카의 친구가 스텝과 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유재석 옆에 서있는 고모가 편집해 놓은 것처럼 신기하다.


이미 고모는 밥을 차리고 계셨다.

어머니보다 조카의 방문이 더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식당으로 가면 내가 계산할게 뻔하니 모처럼 집에 온 조카에게 밥한끼

해먹이는게 고모로서 마음이 편한 모양이셨을 터다.

불편한 다리를 잊은체 부지런히 주방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셨다.

조카 밥상차림이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게 했으리라.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직성이 풀릴만큼 하시도록 하는게 당신의 맘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부조림, 옥돔구이, 쌈, 찰밥, 냉이무국 들이 올라왔다.

집밥은 언제가 옳다.


고모는 오전에 이웃과 떡을 조금 먹었다고 많이 드시지 않았다.

나는 두분의 대화속에서 부지런히 먹고 또 먹었다.

고모가 나의 안부를 물으신다. 어른들은 의례히 그런 걸 묻는다.

식후 커피가 당연시 되듯, 어른들은 가족간에는 그런 궁금함과 해소가 있어야만 하는가 보다.

집사람은 잘있는지, 애들은 몇살인지, 학교는 어디에 다니는지, 공부는 잘하는지.

나는 잘있고 건강하다고.. 애들이 어릴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이제는 공부는 별로 못한다고 했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나의 가정사를 아직 고모는 모른다.

어머니는 고모가 몰랐으면 하길 바라시기 때문이다.

노모의 자존심이다.


나는 부지런히 밥을 먹었다. 고모가 남긴 밥까지 다 먹었다.

고모가 더 먹어라 하지 않을 정도로 섭섭치 않게 먹어드렸다.


우리가 밥을 먹을 동안 창고에 있는 고춧가루, 들깨가루, 귤, 바나나, 강정 등등

주고 싶은 것들, 당신이 혼자서는 먹지 못할 것들을 두루 담아

비닐봉지에 담고 계신다.

어머니는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하시지만 고모의 고집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점심 한끼를 같이 보내고 집을 나섰다.

형수가 내게 준 봉투는 다시 고모에게 전해졌다.

명절때마다 내가 받은 용돈에 비하면 너무 약소해서 죄송했다.


내린 창문으로 어머니는 굽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곳을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의성군 점곡면에도 곧 산수유가 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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