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한 음악가의 죽음은 ‘침묵’이 아니라 ‘해방’일지도 모른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죽음을 떠올리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
정말로 그의 시대는 사라졌을까.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른다.
음악가의 죽음은, 그를 ‘죽게’ 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를 ‘완전히 풀어주는’ 사건이다.
살아 있는 음악가는 언제나 현재에 묶여 있다.
새로운 작품을 내야 하고, 명성을 갱신해야 하며, 때로는 스스로 만든 기준에 갇힌다.
우리는 그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교하고, 실망하고, 다시 기대한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앨범은 나오지 않는다.
더 이상 실패도 없다.
그의 음악은 다시 ‘현재’가 되었다.
언제 들어도 늙지 않는 상태, 비교될 필요 없는 상태로.
죽음이 그의 음악을 멈춘 것이 아니라, ‘영원한 반복 재생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소시민의 죽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라진다.
그의 목소리는 녹음되어 있지 않고, 그의 하루는 기록되지 않으며, 그의 감정은 데이터로 남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릿해지고, 결국 몇 개의 단편적인 이미지로 축소된다.
유명한 음악가는 죽음 이후 더 선명해지고,
이름 없는 개인은 죽음 이후 더 희미해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음악가는 ‘외부에 저장된 존재’이고,
소시민은 ‘내부에 저장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음원, 영상, 기록, 인터뷰, 평론 속에 분산되어 존재한다.
누구든 접속할 수 있는 ‘공용 기억 장치’에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음악가는 계속 호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것도 제한된 수의 사람들 안에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그 존재 역시 함께 사라진다.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을 때조차, 아무에게도 재생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