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2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영자씨

by 파레시아스트

나의 어머니 영자(본명)씨


어머니는 아버지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태어나기전 미국 노동자로 가셨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매달 꾸준히 보내주는 돈으로 땅도 사고 집도 사고

하인도 몇 명 있었는지 그 동네에서는 제일 잘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미국에서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제법 귀하게 자랐을 법한 어머니가 왜 중학교를 가지 못했는지,

아랫동네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데다 노래도 잘하는 촌동네 인싸였으니

아무래도 썸이 좀 있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처럼 세상이 밝지 않았다.

남자는 건달들에게 곤욕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여자는 섬으로 팔려나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가면 코 베인다는 소리만 듣던 세상에 무지한 시골 마님.

남편없이 꾸려간 집안이다 보니

자식들을 품안에만 꽁꽁 옮아 싸고 살다가 소문이 닿는 근처 동네로 시집 보낸 게

아닌가 싶다.


남편 아래로 줄줄이 딸린 시동생 셋

꼬장꼬장한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래도 한 살 어린 철없는 신랑이 어머니는 그렇게 좋았다고.


그렇게 좋던 스무살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군대를 가고

그길로 어머니는 새벽부터 베개에 머리를 놓일때까지

일을 하고 음식을 하고 허드렛을 하는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곤로가 없던 시절, 모든 음식은 나무를 때서 솥과 냄비를 통해 만들어야 했고

끼니때마다 밥은 새로 지어 올려야 했고 국은 달라야 했다.

수도가 없어 물은 마당에 있는 지하수 펌프로 길러서 써야 했다.

이 작두식 펌프는 고무 패킹이 잘 닳는데, 특히 겨울에는 뜨거운 물 한주전자를 부어넣고

작두질을 쉼없이 해야 끄억~끄억~ 하면서 그제서야 물을 토해낸다.

그 차가운 물에 설거지를 하고 겨울 빨래는 개울 얼음을 깨고 해야 했으니

참으로 어설프지 그지 없던 시절이다.

작두 펌프.jpg


할아버지는 안동김씨 35대손이다.

동네 어르신들과 사랑채에서 노름을 자주 하셨다.

막걸리 심부름을 내가 자주 했는데 그럴때면 나는 라면땅 한봉지를 수고비로 얻을 수 있었다.

노름판이 끝날 무렵, 어르신들은 마신 술로 꾀나 거나해지곤 했는데 그때부터 양반상놈 입싸움이 시작된다.

니가 양반이네 니가 상놈이네 하면서 싸웠다.

마지막 판에는 욕설이 오가고 멱살잡이까지 하신곤 했다.

'내가 볼 때 할아버지가 상놈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면 꼭 옛날 관가의 이방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라면땅.jpg


그 시절 어느집이나 비슷했겠지만, 유교에 따른 생활관습의 영향력이란 대단했었다.

부모에게는 효도를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남존여비

일년에 10번을 넘어가는 제사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죽은자를 잘 모시기 위해 사는 세상


키는 작았지만 힘이 좋았던 어머니는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힘이 솟고, 또 자고 일어나면 힘이 솟기에

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평야지가 아닌 우리 동네는 고추, 마늘, 깨 등 온갖 것들을 농사지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다.

어머니가 한 오십쯤 되었을 때 고추를 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현아.. 전에는 자고 일어나면 힘이 솟고 솟고 하더니,

이제는 자고 일어나도 힘이 안 솟노"

그런말 하실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때가 행복했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