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춘?"
'갠춘'은 그녀가 카톡 메세지에서 많이 쓰는 단어였습니다.
그녀의 아이디는 '월남치마'
우리는 사무실에서 만났어요.
매일 아침 7시쯤.
그녀는 녹즙을 배달하는 매니저였거든요.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죠.
마스크 때문에 알아 볼 얼굴이라곤 눈과 이마 머리카락 뿐이었어요.
체구는 조그맣고 얼굴도 조그만한 그런 보통 여성분이었어요.
녹즙배달이 그렇듯 일어나자마자 준비하고
사무실 돌아다니며 배달하는 일이라 꾸미고 그럴 일은 없죠.
그래도 늘 단정하고 한마디라도 아침인사를 건네면서
녹즙을 건네곤 했죠.
성실하고 때묻지 않은 밝은 느낌의 중년여성이었어요.
나는 일찍 출근하는 편이라 사무실에는 늘 우리둘밖에 없었어요.
둘이 있다고 뭐 다를게 있나요.
인사하고 녹즙받고 '날씨가 춥네요. 덥네요. 비가 오네요'
이정도죠. 그렇게 몇 달간을 지냈어요.
우연히 카톡을 봤는데, 예쁘게 입고 골프 라운딩하는 사진이 있더군요.
사진이 예뻐서기 보다는 내가 골프를 좋아하기에 반갑더군요.
"골프 치시네요?" 톡을 했어요.
그렇게 한마디 두마디 오고가다보니 편해지게 되더군요.
밥 먹자고 했어요. 내가 먼저.
그게 우리의 첫 데이트랄까 만남이였죠.
우리가 만난날은 4월 벛꽃잎이 떨어지는 봄밤이었죠
나무로 된 댐 산책로를 발 맞추어 걸었어요.
산책로 데크는 토각토각 소릴내며 발걸음을 따라왔지요.
몸매가 살짝 드러난 투피스의 그녀. 주황색 가로등 아래서 예쁘더군요.
중년이지만 소녀같은 모습이 남아 있었어요.
흘러내린 웨이브진 머릿결, 반짝이는 볼, 조그만 입술
난 그렇게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그렇게 우린..
여름날 저녁에는 코스모스 강변길을 늦게까지 걷고,
가을엔 갈대가 있는 산성길을 숨가쁘게 오르며,
안개 자욱한 밤 노랑 은행잎이 벚꽃처럼 떨어지는 길을 걸었고요,
겨울에는 소박한 선술집을 다녔죠.
그대는 별이 쏟아지는 호숫가 산책을 유난히 좋아했지요.
벤치에서 내 다리를 베고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졸리면 또 한숨 자기도 하고..
술이 약해서 맥주 한병이면 취해서 한병 더 마시자고 조르던..
헤어질 땐 뒷꿈치를 들고 총총 다가와선 내품에 한번 더 안겨왔던 당신.
남들이 보면 손을 놓고 남들이 없으면 손을 잡았죠.
풀벌레 소리 요란한 보리밭 사이 포장길에서
뜨거운 숨으로 당신을 안고 못내 보내지 못해
아쉬워하던 그 초여름밤
나를 보내지 못해 몸서리 치던 당신의 작은 등근육이
아직도 손끝에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세월에 눈이 달렸다면
당신에게 만큼은 제발 비껴 갔으면 했던 당신.
사랑한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겠어요.
잘 계세요. 부디.
만나는 날부터 보내는 날까지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