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가 우리 곁을 떠나던 날에
기르던 애완동물, 거북이가 곁을 떠났다.
여름의 초입을 재촉하는 한동안 줄기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이른 새벽, 한 동안 움직임이 없는 거북이를 물속에서 꺼냈더니.
결코 좁지 도 넓지 도 않은 자기 집, 수조 안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듯하다.
이제 책상 옆 수조 엔 항상 내 움직임에 기척을 내던 거북이가 없다.
몇 날 전까지도 같은 공간에서 살았지만, 이젠 이른 새벽이면 홀로 거실에 있다 것이
적막함을 깊게 한다.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누군가 그 슬픔으로 긴 시간을 지낼 것을 걱정한다.
우려한 대로 아침부터 그 아이의 주인(?)인 막내와 집 식구들의 분위기가 친지의 죽음보다
더 침울하다. 모두가 아침식사도 거른 채, 멍하니 다들 그 아이가 살던 수조만 바라본다.
거북이의 이름은 <개똥이>이다.
왜 그런 이름인가 하면, 17년 전 막내 아이가 기르고 싶다 하여 키웠던 첫 번째 애완동물이
거북이였다. 그 이름이 ‘구복이’ 였는데 집에 온 지 1주일 만에 죽었다
그래서 이번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가 아닌, 가장 활발하고 힘이 센 것처럼 보인 아이를 선택했다.
한 번의 실패로 이번엔 진심으로 거친 생명력으로 오래 살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그런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기른 지 어느새 17년이나 지났다.
그 어린 막내가 대학을 졸업할 나이까지 같이했으니……
그런데 최근 6개월 전에 먹이도 잘 먹지 못하기에 병원에 갔더니,
소화불량과 장기 이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두, 세 번 병원에 다녀온 후로는 예전과는 다르게 활기 없는 모습을 보이는 거북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몇 날 전, 거친 비바람 부는 날에 홀로 우리 곁을 떠났다.
결국 먼 곳까지 가서, 화장하고 한 줌의 재로 변해 예전 같지는 않지만,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아왔다.
동물이라 해도 때로는 사람보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듯하다.
사람에게서 느끼는 슬픔은 애증이라는 감정의 찌꺼기 있기에 슬픔이 반감된다.
그런 반면 말 못 하는 동물은 무조건적으로 열심히 따르는 좋은 기억만이 있어서
그 슬픔이 배가(倍加) 되는가 보다.
이제 곁에 있던 그 아이가 덩그러니 빈 수조만 남긴 채,
아마도 오랫동안 그토록 짜증 냈던 비릿한 물 비린내를 그리워할 것 같다.
어딘가에서 물 비린내가 나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마 그 아이의 냄새라는 걸 이제 느낀다.
뇌 심리학자인 <W. 펜 필드> 박사는
“사람의 뇌세포는 경험한 모든 것은 완전히 기억하고 있다” 고 한다.
어떤 기억이든 테이프 레코드(tape recorder)의 녹음처럼 한번 경험한 것은
본인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완전히 소거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우리가 “시간에 따라 차례로 새로운 체험으로 이전보다 강하고 신선한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 그런 새로운 경험이 상대적으로 강해서
마치 예전의 기억들이 잊히거나 삭제된 것처럼 느낄 뿐”이라고 한다.
물론 잊히겠지만 누군가를 멀리 보낸다는 건, 여전히 눈시울을 붉게 한다.
최근 가져보지 못한 슬픔이라는 단어보다 더한
허전함이 주는 이 먹먹함을 무엇이라 해야 할까!
좋은 기억이 주는 슬픔은 오래가고 아픔 역시 배가 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