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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변하지 않는가1 : 이타성

드리블러는 이타적 플레이스타일을 학습할 수 있을까

by 정준민

13살쯤인가, 7살쯤의 이강인 선수 슛돌이 시절 경기들을 봤었다.

'나보다 드리블을 더 잘하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이강인 선수가 세월이 흘러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의 일원이 되었다(나는 아마추어 풋살이나 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훌륭한 드리블러이고, 10번 롤이 가능한 테크니션이다.


하지만 그는 주전으로 나오지 못하고, 중요한 경기에서는 교체로도 나오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언급되는 것은 그가 템포를 끊어먹는다는 것이다.

현대축구에서 실력은 '템포가 얼마나 빠른가'와 거의 비례하는데, 그 이유는 한 번의 킬패스, 한 번의 드리블 성공으로는 블록을 갖춘 조직 수비+협력 수비를 뚫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블록을 뚫고 골을 넣기 위해서는 최소 3번 이상의 패스가 빠른 템포로 연결되거나 상대 위험지역에서 직선적인 드리블로 직접적인 균열을 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강인 선수의 스타일은 PSG 감독인 엔리케에게 문제시되는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3번 이상의 패스를 하는 것을 '방해'하고, 위험지역이 아닌 공간에서의 드리블 역시 상대방이 '블록을 재형성하는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엔리케는 감독으로서 이런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이강인 선수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빠른 템포에 적응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키패스를 만들기 위해 좀 더 공을 갖고 있으면서 각을 만들기 위한 드리블을 하기보다, 빠르게 보이는 공간에 있는 동료들에게 '평범한 패스'를 할 것을 요청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강인 선수는 그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동안 주전으로 출전시간을 보장받던 이강인이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결국 이강인이 '팀'이 원하는 이타적 스타일을 학습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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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레벨에 있는 이강인 선수를 말했지만, 사실 4살부터 축구와 풋살을 하면서 '기질적'으로 드리블을 즐겨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이런 분들도 이강인 선수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패스'가 승리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해도 바뀌지 않는 것을 많이 보았다.


물론 아마추어는 본인만 재밌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드리블, 내가 하는 키패스가 재밌으니 이런 스타일로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인간은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소성의 논의를 위해 다루기에는 무게가 가벼울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가 엘리트 레벨에 있는 이강인 선수를 굳이 끌고 온 것이다. 프로로서 생존하기 위해서 조직이 원하는 바가 분명하게 있고, 학습의 방향성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학습되지 않는 모습에 대한 사례로서.


하지만 자주 이강인이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된 다비드 실바(이강인 선수와 마찬가지로 발렌시아 출신)의 경우처럼 원래는 좁은 공간에서 드리블과 볼키핑에 능하고, 볼을 오래 끌며 키패스를 하려고 했다가 펩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면서 원터치 패스와 평범한 패스를 자주 하게 된 케이스도 있다. 따라서 어떤 선수들은 분명 기질적인 부분을 넘어서 이타적인 플레이를 학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질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이타적인 플레이를 학습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자존심을 굽힐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추측의 영역인데, 아마도 이강인 선수는 본인의 플레이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각을 만들어서 키패스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플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패스가 좀 더 게임을 이기는 게 효과적일 수 있고, 직접적으로 블록을 깨는 드리블을 하는 선수들이 내가 아닌 뎀벨레나 흐비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면에 다비드 실바진심으로 내가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패스가 게임을 이기는 더 효과적일 수 있고, 꼭 키패스나 블록을 깨는 드리블을 하는 것이 내가 아닌 덕배나 스털링, 사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는 '기질을 극복하여 이타적 플레이를 학습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팀의 성공을 가장 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아마추어로서 같은 팀으로 풋살을 할 때에도 개인의 재미나 자존심이 아니라 팀의 승리, 팀이 좀 더 재밌는 축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패스'의 중요성을 납득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팀으로 풋살을 할 때, 더 재밌기는 하다.


PS : 물론 팀의 성공, 조직의 성공을 우선시하는 게 무조건 좋고, 옳은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그저 '기질을 극복하여 변화할 수 있느냐'이기 때문에 초점을 좁혀 이야기 해보았다.

요즘세대의 청년들과 커리어 컨설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분들이 결국 조직의 성공보다는 '나'의 성공과 '나다움'을 찾는 데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에 대해 도덕적으로 옳냐, 그르냐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성공과 나다움을 찾는 게 더 도덕적으로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질적인 것을 극복하여 변화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는 마찬가지로 내가 들어가고자 하는 조직의 성공을 우선시할 수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본질적인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변화가능성 #가소성 #이강인 #다비드실바 #이타성 #개인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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