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해 본 적은 없어
"하루 종일 교육 이야기만 할 수 있어"
캡틴 아메리카의 "하루 종일 싸울 수 있다"는 대사를 들으면서 저런 생각을 했다.
사실 하루 종일이 뭔가. 3일 밤낮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해본 적이 없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주변에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경험적으로는 정말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다들 대화로부터 도피하기 때문인 것 같다.
도피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적당한 타협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게 싫어서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런저런 사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게 싫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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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타인은 “교육이 사회의 오류를 보완할 수 없다”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교육은 사회구조의 재생산 기제에 불과하다는 말인데, 안타깝게도 큰 틀에서는 예외 없이 들어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북유럽도 사회구조 개혁이 일어난 후 교육적 변화가 일어났고,
68혁명 이후에 유럽에 교육적 변화가 일어났고, 뭐 그런 식.
하지만 내가 아직 어른이 안 된 건가.
쓴맛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아직도 저 번스타인의 말을 납득하고 싶지 않다.
사실 좀만 더 잘하면 재생산 기제 이상을 교육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래서 매일 이런 류의 고민을 하고 현장에서 부딪친다.
교육이 재생산 기제 이상이 되기 위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할까?
문해력이 부족하고, 현란한 멀티미디어의 말초적 자극에 길들여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학습자들이 Upset 할 수 있으려면 교육과정에 어떤 요소들을 가미해야 할까?
계속 변화하는 학습자 특성에 맞게 모두가 유의미한 학습을 할 수 있게 돕는 보편적 학습설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교육과정을 학습자의 맥락에 맞게 재구성하고 실제로 구현할 교육자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그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어떤 연수가 진행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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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썼지만, 몇 년 후에는 적당히 타협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때 그런 나를 마주하면서도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직면하지 않으려고 할까.
순수한 호기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