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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우리를 위한 싸움, 나를 위한 싸움

by 정준민


싸우는 것도 애정이 있으니까 하는 것.

잔소리도 애정이 있으니까 하는 것.

더 나아지고 싶으니까.

우리로서.


그러나 애정이 없어서 싸우기도 한다.


"(내가 더 노력할 정도의 마음은 없으니)

네가 좀 더 노력해주면 안 돼? 좀?

왜 나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


"(내가 더 노력할 정도의 마음은 없으니)

네가 좀 더 나를 이해해주면 안 돼? 좀?

왜 나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

우리를 위해 너라도 노력하면 좋겠어."


성장을 위한 교육은 필연적으로 아이들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육자는 항상 학생에게 더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앞서 말했듯 더 노력하기 싫으니까.

내가 적당한 노력을 들여 준비한 교육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놓아준다.

내 노력을 알아주지 못했고, 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더 노력하고 싶지 않으니까.


우리를 위한 싸움을 하는 교육자는 극소수이다.

왜냐하면 교육자 입장에서는 우리가 아닌, 학생만을 위한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력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에겐 언제나 을로서 사랑을 구걸하게 되니까.

그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 나한테 득이 되는 게 뭔가?"


그러나 학생이 빛나면 그 빛에 의해 빛나는 것이 교육자이다.


"태양의 빛으로 빛나는 달과 같은 위성임을 받아들이면

이 싸움이 '우리'를 위한 싸움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 혹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를 위한 싸움을 하는 교육자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를 위한 싸움을 해야 된다고 교육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교육자는 교육자이기 이전에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그러나 애정이 없는 싸움을 하는 교육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방관하고, 내치는 교육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의지와 실천은 사전적 의미가 다르다.

당연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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