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한다는 건
나를 지워가는 일이랍니다.
내가 아는 것을 교육하려는 데 나를 지워가야 한다니.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지만.
실제로 그러하니 어쩌겠습니까.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거나, 가끔은 아예 오지 않는 아이들.
뭐든지 다 해 낼 것 같이 다짐하더니
무기력 한 겨울잠을 자는 친구들.
얼토당토않는 핑계를 대며 남 탓을 하는 학생들.
무엇을 하면 되는지가 분명한데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작은 악마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이들을
감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삶을 지워나가는 수밖에 없겠죠.
“아니, 도대체 왜 저래?”
가 아니라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로 질문을 바꿔봅니다.
저 작은 악마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나와의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그 아이의 개연성.
뭐든 다 해 낼 것 같았던 아이가
무기력한 겨울잠을 잘 수밖에 없는 개연성.
얼토당토않는 핑계를 대며 남 탓을 할 수밖에 없는 개연성.
무엇을 하면 되는지가 분명한데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개연성.
그러다 보면 그 작은 악마들이 갖고 있는 그럴듯한 개연성이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다 보면 그 작은 악마들의 이면에 잠들어 있는
작은 천사들이 얼핏 아른거립니다.
51%의 관성에 의해 표면에 드러나 있는 작은 악마의 이면에 쭈그리고 있는 49%의 작은 천사가.
그 49%의 작은 천사가 51%가 되어
작은 악마를 밀어 낼 개연성을 찾아봅니다.
나와의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가
다시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만들 개연성을.
무기력한 겨울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그 친구가
뭔가를 해 보려고 시도하게 만들 개연성을.
얼토당토않는 핑계를 대며 남 탓을 할 수밖에 없는 학생이 본인의 문제를 직시하게 만들 개연성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작은 악마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겠다고 만들 개연성을.
그렇게 결코 작지 않은 49%의 천사가 있다는 믿음이
51%의 작은 천사를 만들 개연성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아니, 그런 개연성을 발견했다 믿게 만듭니다.
하지만 당신이 발견한 그 개연성은
대부분 51%의 작은 천사를 만들지 못할 겁니다.
착각이니까요.
나를 온전히 지우고 그 작은 악마의 입장에서
개연성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그 착각이 가져다준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를 교육할 용기를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가끔은 선물처럼 우리는
작은 악마들이 작은 천사로 바뀌는 기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을 우리의 실력이라고 말하기엔
우리의 작은 악마들 입장에서 개연성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니 절로 겸손해집니다만.
어쨌든 우리에게도 그런 선물 같은 기적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런 기적을 자주 보게 된다면,
당신은 기꺼이 누군가를 교육할 믿음을 가진
교육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당신의 삶에 부합하는 친구들에게만 유효한
‘교육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교육을 하는 교육자가.
당신 이전에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년, 10년이 흘러도 기꺼이 교육하길 바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