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의 윤리
라캉으로부터 니체로, 능력주의의 윤리학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렇기에 욕망을 실현한다는 것은 '나와 같은 것을 욕망하는 타자들을 제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욕망을 실현한다는 건 누군가를 제낄 수 있는 강자가 됐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오일남은 라캉의 테제를 은근슬쩍 니체로 연결한다. 강자가 된다는 것은 약자가 세워놓은 도덕률이란 선을 넘어서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벨이 아닌 카인이 되어가는 길이 된다.
프런트맨의 서재에 라캉의 욕망이론과 함께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는 이유다. 결국 오징어 게임은 약자들에게 다시금 스스로의 욕망을 실현하는 강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선물이라고 오일남과 프런트맨은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강자가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실 강자가 되기 위한 과정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 라캉에 의하면 욕망을 실현하는 것보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어떠한 욕망도 상징계에서 온전히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456명 중 455명은 죽음이란 결과를 맞이하지만 일남의 관점에서 오징어 게임은 모두에게 선물이다. 강자가 되기 위한 과정,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모두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겪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죽음충동과 연관하여 더 다룰 수 있지만 생략)
게임 설계자인 일남은 이러한 윤리(?)를 가장 극도로 받아들인 자이다.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 게임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하는 사람이 된다.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괜히 보여준 것이 아니다. 이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궁극적인 형상이 '아이'인 것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아이처럼 스스로의 욕망을 순수하게, 어떠한 도덕률의 제약 없이 실현하는 존재로 나아가는 모습을 제시하는 것.
이렇게 '윤리를 걷어낸 윤리'가 지배하는 오징어 게임 특유의 공정기반 능력주의는 기존의 윤리들을 모두 잠식한다.
마치 한때 나치즘이 독일 사회를 잠식했듯이.
따라서 오징어 게임은 능력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어떤 모습이 펼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오징어게임 #라캉 #니체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초인 #능력주의 #윤리학 #나치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