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오일남의 예술행위인가?

공정한 기회 이면, 라캉의 욕망이론

by 정준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다.

그래서 타인이 원하는 돈을 많이, 아주 많이 벌고 싶었다.

그러다가 빚더미에 올랐다.


라캉에 의하면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는 욕망의 그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어떤 욕망도 온전히 충족될 수는 없다. 어떤 욕망도 충족되는 순간, 새로운 결핍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이 지닌 욕망은 무한 동력장치인 동시에 밑 빠진 독과 같다.

그렇게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기초적인 동력인 욕망이 만족이란 것을 모르니, 그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계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라캉은 이를 언어의 이중성이라 말한다. 상징을 통해 무언가를 드러내기에 그 상징을 벗어난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유가 <스물셋>에서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언어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욕망하는 무언가를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순간, 그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것을 말이다. 이 상징을 벗어난 무언가를 놓치게 되는 것이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 너머 실재계의 ‘실존재’를 잃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유는 <스물셋>에서 어떠한 실존재도 잃고 싶지 않기에 분명하게 모순되는 언어들을 동시에 적으면서도 그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상징계에서 아이유가 스스로를 찾기 위한 발버둥이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상징계에서 잃어버린 그녀의 실존재는 더욱 크게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이를 음악이란 예술을 통해 존재가 남긴 흔적의 향기나마 맡으려고 한다. 이는 잃어버린 실존재를 찾으려는 활동으로서, 결여된 것을 향유하려는 의지(죽음충동 혹은 주이상스)의 표현이다.

이렇게 아이유의 <스물셋>을 통해 라캉이 말하는 언어의 이중성과, 예술을 통해 결여된 것을 향유하려는 의지를 표현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이렇게 긴 설명을 굳이 한 이유는 최근에 오징어 게임을 라캉의 관점에서 다뤄보고 싶어서다.


“오징어 게임도 오일남의 결여된 것을 향유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예술이라고 봐야 하는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캉에 의하면 예술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란 것이 고상하고 삶에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상징계에서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있는 인간이 잃어버린 실존재를 찾기 위한 끝없는 여정이자, 결여된 것을 향유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시지프스가 바위를 끝없이 언덕 위로 올리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역시 오일남의 ‘재미’라는 말로 표현된 결여된 것을 향유 하고자 하는 끝없는 여정이다. 타인이 욕망하는 ‘돈’이란 것을 욕망하여 끝끝내 충족한 이후에 당연하게도 찾아온 결핍을 다시금 충족하기 위한 시지프스적 행위인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그 자신이 근대화가 진행되는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저질렀을 행위들)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은 믿을 수 없다’는 명제를 증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언어적 이중성에 의하여 오일남은 모순되게도 ‘인간은 믿을 수 있다’는 명제도 증명하고 싶다.

영원한 깐부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게임을 만들지만, 쌍문동의 성기훈에게 “우리는 깐부잖아”라고 말하며 구슬을 건네준다. 죽음의 순간에도 기훈을 불러 인간은 믿을 수 없다는 명제를 증명하고자 게임을 시도하는 일남이지만, 한편으로는 12시가 되기 전에 동사 직전의 인간쓰레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일남이다.

해서 오징어 게임 역시 아이유의 <스물셋>처럼 일남이 상징계에서 잃어버린 실존재를 느끼기 위해 극명히 모순되는 욕망을 모두 쫓고자 한다. 일남만 그런가? 기훈도..?


어쨌든. 이런 일남이 만든 오징어 게임의 정언명령은 라캉 철학의 테제이기도 한 ‘네 욕망을 포기하지 말고 따르라’이다. 오징어 게임의 우승자가 된 후에 프런트맨이 된 이병헌의 책장에 라캉의 ‘욕망이론’이 꽂혀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오징어 게임을 지배하는 윤리(도덕률) 역시 ‘평등한 기회의 제공과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대외적인 표어라기보다는 욕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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