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러닝
몸이 아픈 날을 빼고는 러닝을 거르지 않았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느새 그게 기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루가 끝날 때 남는 질문도 늘 비슷했다. 오늘은 뛰었나, 안 뛰었나.
그 질문에 답을 못 하면 하루가 덜 끝난 느낌이 들었다.
태안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풀빌라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엔 근처 커피숍에 들렀다.
바닷가라 바람이 셌고, 체감 온도는 생각보다 훨씬 낮았다.
커피를 주문해 두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나는 잠깐만 나갔다 오겠다고.
처음엔 정말로 잠깐일 생각이었다.
여행지에서까지 뛸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생각도 잠깐 스쳤다.
그런데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등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괜히 시선이 그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도 앱을 켜봤다.
대략 4km 정도.
멀지 않다고 느낀 순간, 이미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바람은 계속 얼굴을 때렸다.
손끝이 먼저 차가워졌고, 숨도 생각보다 빨리 가빠졌다.
달리기 좋은 날씨라고 하긴 어려웠다.
핑계를 대자면 얼마든지 댈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래도 뛰었다.
결심했다기보다는, 이미 몸이 알고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달렸다.
속도는 느렸고, 호흡은 금세 흐트러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이 살짝 밀리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날의 러닝은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도, 컨디션을 점검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등대에 도착했을 때, 특별한 감정이 밀려오진 않았다.
사진을 찍고 오래 서 있지도 않았다.
숨을 고르며 바다를 잠깐 바라봤을 뿐이다.
‘여기까지 왔네.’
그 생각 하나면 충분했다.
돌아오는 길엔 바람이 등을 밀어줬다.
같은 길인데도 느낌은 달랐다.
몸은 조금 가벼워졌고, 머리는 훨씬 조용해졌다.
여행지에서도 결국 뛰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다.
숙소로 돌아와서야 기록을 확인했다.
5km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4km 남짓.
바람 때문인지 페이스는 들쭉날쭉했고, 깔끔한 러닝이라고 부르긴 어려웠다.
그래도 멈추진 않았다.
그날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커피숍으로 돌아오니 가족들은 여전히 앉아 있었다.
“어디까지 갔다 왔어?”
나는 그냥 말했다.
“등대까지.”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이해를 구할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러닝을 시작하고 나서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여행지에서도 ‘쉴까’보다
‘어디로 뛸까’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는 점이다.
몸이 아프지만 않다면,
나는 아마 또 뛰러 나갈 것이다.
그게 지금의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