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회의실에서
나는 가장 느린 사람이었다.
오랜 경단녀 생활을 끝내고
글로벌 스타트업 브랜드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재택이 기본이었고
대부분의 소통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업무 툴은 손에 붙어 있어야 했고,
나를 제외한 대부분은 영어가 능숙했다.
나는 모든 게 한 박자씩 느렸다.
영어는 매끄럽지 않았고
시스템은 익숙하지 않았다.
회의 링크 하나를 누르는 일조차
긴장의 연속이었다.
디자인 전문성 하나만 붙잡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느 날,
원어민이 참여하는 온라인 회의가 열렸다.
상품 설명을 맡은 사람은 나였다.
다른 직원이 통역을 맡았지만
질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웃어야 할 타이밍도 놓쳤다.
화면 속 사람들의 속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말이 막히는 순간,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가장 준비되지 않은 사람인가.’
회의가 끝나자 한숨이 먼저 나왔다.
다음에는
굳이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때,
아이의 교실이 떠올랐다.
아무도 속도를 낮춰주지 않는 자리.
틀린 사람은 없지만
늦은 사람은 있는 자리.
아, 이런 느낌이겠구나.
늦은 자리에 있다는 것.
따라잡지 못할 속도 속에 서 있다는 것.
하랑이는 매일 이런 마음으로 교실에 앉아 있었을까.
나는 느린 학습자의 부모로 10년을 살았지만
느린 학습자의 자리에 서 본 적은 없었다.
아이의 힘듦을 대신 말해왔을 뿐,
아이의 속도로 숨 쉬어본 적은 없었다.
기다리기보다 앞에서 끌어당기려 했을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아이의 속도가 아니라
아이의 자리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