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랑이를 찾는 목소리

— 아이의 자리를 지키는 일

by Eun

4학년이 되던 해,

우리는 느린 학습자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학교에서는 늘 조용하다는 아이가
그곳에서는 먼저 말을 걸었다.
또래와 눈을 맞추고 함께 웃고,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잠시
예전의 하랑이를 떠올렸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고
발표도 곧잘 했고
궁금한 것이 많던 아이.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담임교사는 가끔 메시지를 보내왔다.

“발표를 잘해요.”
“밝고 적극적인 아이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작아졌다.

말하기 전
주변을 한 번 더 살폈다.


학기 초 상담 때마다 들었던 말.

“조용한 아이네요. 늘 혼자 있어요.”

아이는 자신의 다름을 눈치채며

점점 조용해졌다.


2학년 때,
젖은 옷으로 돌아온 날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친구들이 물을 뿌렸다고 했다.
교사는 장난이라고 말했다.


3학년 때에는
물병 안에 흙이 들어 있었다.

매번 장난이라며
물을 뿌리고, 얼굴에 모래를 던지던
그 아이들이었다.

이번에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
상대 부모의 연락처를 받아 사과를 받았다.
더 이상 하랑이에게 다가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 일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하랑이는
그 아이들과 인사라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상처보다 관계를 잃는 게 더 무서운 아이.

나는 화가 났고 동시에 미안했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하랑이가 더 힘들어했던 건
괴롭힘보다 무관심이었다는 걸.


교실 안에서도
교실 밖에서도
아이는 늘 혼자였다.

또래도, 교사도
완전한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자리.


밝던 아이가

눈치를 보고
조용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는

같은 속도로 함께하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 당시

느린 학습자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다.

비슷한 지역의 아이들이 모여
공부도 하고 수업도 듣고 함께 노는 곳.

내 지역에서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같은 고민을 하던 엄마 한 명과 계획을 세웠다.

장소를 알아보며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공간은 있었지만 이해는 많지 않았다.


설명은 늘 길어졌다.

“학교 밖에서 보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속도가 조금 느립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면 됩니다.”

열 번이 넘는 통화 끝에 작은 공간 하나를 얻었다.


교사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 아이들을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갈 아이들"로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타 배움터 부모들과
센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작은 배움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모이자
이 일이 하랑이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아이,
타인에게 거의 관심을 두지 않던 아이,
학교폭력에 노출되었던 아이.


엄마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학교에서는 말이 없던 아이들이
이곳에서는 먼저 말을 했다.


하랑이가 아파서 못 온 어느 날,
민수(가명)가 물었다.

“형은 오늘 왜 안 왔어요?”

타인에게 관심이 없던 아이가
처음으로 다른 아이를 찾은 날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하랑이를 먼저 걱정해 주는 친구가 생겼다.

민수의 엄마는
그날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나는 그날을 오래 기억한다.


힘들어서 멈추고 싶던 날에도
이상하게
하랑이보다 민수가 먼저 떠올랐다.


이 공간이 사라지면
민수는 다시
자기만의 동굴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하랑이와 걷겠다고 시작한 길이었는데
어느 순간
여러 아이의 발소리가 함께 섞여 있다.


아이의 속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달라지지 않았고
빨라지지도 않았다.


다만
먼저 이름을 부르는 날과
누군가를 기다리는 날이 늘어간다.


학교에서는 말이 없던 아이들이
이곳에서는 작은 소리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혼자였던 아이들 곁에
이제 함께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오늘도 우리는
그 자리에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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