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가 뭐라고.

by Eun

“엄마, 나 오늘 1등 했어!”

하랑이는 하교 후 문을 열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끼리 체스를 두는 모양이었다.


아깝게 졌다고 하던 날이 지나
오늘은 1등이란다.


어울린다기보다는

체스를 제법 두니

아이들이 조금씩 끼워주는 것 같았다.


늘 혼자 있던 하랑이가
아이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5학년 상담 날,

담임선생님이 물었다.

“하랑이는 뭘 잘하나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체스와 수영을 말했다.

7살 때부터 아빠와 두던 체스와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해 시작한 수영.


사실 대단히 잘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며칠 뒤,
교실 한쪽에 체스판이 놓였다.

선생님이 마련해 주셨다고 했다.


그전까지 하랑이는
쉬는 시간마다 혼자 책을 읽었다.

“오늘은 그냥 있었어.”

학교 이야기를 점점 하지 않던 아이였다.


그런데 체스판이 생긴 뒤로 아이가 달라졌다.

“오늘은 누가 이겼어.”
“아, 아깝게 졌어.”

아이의 말이 늘어갔다.


그 무렵,
하랑이는 순회교육을 거부했다.

순회교육은 도움반으로 이동할 수 없는
완전통합 특수교육대상자를 위해
외부 교사가 학교로 와
어려운 과목을 도와주는 수업이다.

하랑이는 수학 시간마다

친구들과 같은 교실이 아닌

다른 교실에서 그 수업을 받고 있었다.


“엄마, 나 도움반이야?”

해맑게 묻는 얼굴이 아니었다.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혼자 다른 교실로 내려가 따로 수업을 듣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나는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는 수업을 계속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기만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을 알아가고 있는 듯했다.


담임선생님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수학 시간에 교실에 있어도 됩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고르더니 덧붙였다.

“요즘 하랑이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기지 않았지만 믿고 싶었다.


공개수업 날,
하랑이는 정말 손을 들었다.

맞는 답인지도 모를 말을 하고 뒤를 돌아 나를 보며 웃었다.

'엄마, 나 잘했지?' 그런 표정이었다.


그동안 교실에서 조용히 지내던 아이였다.

말하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지나가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날은
손을 들고 자기 목소리를 냈다.

수업이 끝나자
담임선생님이 나를 먼저 찾았다.

“보셨죠? 하랑이 오늘 너무 잘했어요.”

나는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뒤로

하랑이는 매일 아침
선생님과 어제 있었던 일을 조금씩 이야기했다고 한다.

짧은 이야기들이 하루를 여는 인사가 되었다.


선생님이 교실에 둔
작은 체스판 하나가 아이의 자리를 만들었다.


하랑이는
5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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