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덕분에.

by Eun

하랑이의 동생 아랑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느린 아이의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기다림을 먼저 배운다.


귀여움만 받고

내리사랑을 듬뿍 받는 다른 집의 동생들과는 조금 다르다.

느린 아이의 동생은

왜인지 저절로 눈치가 빨리 자란다.


나는 늘 두 아이에게

똑같은 사랑과 가르침을 주겠다고 다짐했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느린 아이의 엄마가 먼저였다.


아랑이가 점점 자라며 알게 되었다.

이 아이에게도

내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시간도, 마음도, 돈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또래와 키즈카페에 가고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

아랑이는 형을 따라 치료센터에 다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다른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아랑이는 형을 따라

느린 학습자 프로그램과 배움터에 나갔다.


그 당시

나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느린 학습자 아이들의 사회성과 또래 교류.


일반 또래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가 적은

느린 학습자 아이들의 모임에서

일반 형제의 참여는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늘 환영받는 일이었다.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았지만

아랑이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그래서 계속 함께 다녔다.


나는

아랑이는 알아서 잘하는 아이이니

학습은 고학년이 되어서 시켜도 늦지 않다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아랑이의 1학년 상담 날.

그날의 상담은

그동안의 상담과는 조금 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선생님의 눈빛도, 내 마음도

하랑이 상담 때와는 달랐다.


늘 어깨를 펴지 못했던 내가

그날은 조금 자연스럽게 어깨를 펴고 들어갔다.


그때 아랑이 반에는

ADHD 과잉행동 성향이 있는 수호(가명)가 있었다.

수호는 아랑이를 무척 좋아해 계속 따라다녔다고 한다.


선생님은 아랑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아랑이 절친의 엄마도

수호가 아랑이 때문에 친구 무리에 들어오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랑이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고.

왜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아랑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왜 불편해? 수호도 내 친구야.

배움터 친구들이랑 비슷해. 그냥 조금 기다려주면 되는 거야.”


상담 시간에 그 이야기를 전하자

선생님은 정말 놀란 표정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장애 인식개선 교육을 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머리로만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랑이는 같은 반의 도움반 아이도

수호도 그저

눈, 코, 입 생김새가 다른 아이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편견 없음이 신기하다고 했다.


또 한 명의

나의 양육 방식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아랑이를 특별히 키운 적이 없다.


대신 하랑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랑이와 함께 배움터에서 느린 아이들과 놀고

같이 프로그램을 하는 이야기.


선생님은 말했다.

“이건 국영수 학원보다 훨씬 값진 경험이에요.

다른 아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을 정도예요.”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아랑이는 ‘형 덕분에’ 참 잘 자라고 있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늘 마음 한편에 아랑이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형 때문에 아랑이가 누리지 못한 것들.

그래서 배움터에 함께 다니는 일도

어쩌면 아랑이의 희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랑이뿐 아니라 아랑이도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세상에.

“형 덕분”이라니.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전화가

다시 울렸다.

5학년 하랑이 담임선생님이었다.

“어머님, 오늘 일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점심시간 놀이터에서

하랑이와 아랑이가 우연히 만나 함께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아랑이 같은 반인 1학년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 몇몇 아이들이 하랑이를 놀리며

선을 넘는 행동을 했다고 했다.

아이들 눈에는

하랑이가 넘사벽 5학년이 아니라

놀려도 괜찮을 것 같은 만만한 형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순간 화가 난 건

하랑이가 아니라 동생 아랑이였다.

하랑이는 그만하라 이야기하고 아랑이도 아이들을 말렸지만

아이들이 멈추지 않자

아랑이는 1학년 담임선생님께 가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사과했다.

하지만 아랑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형한테 가서 직접 사과해야 해요.”

그리고 5학년 교실에 가서 형에게 직접 사과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갑자기 교실에 들어온 아랑이와 아이들을 보고

하랑이와 담임선생님은 조금 놀랐다고 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하랑이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하랑이는 그 상황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일이 커지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아랑이는 또 그게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 말만으로는

상황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주신 것이었다.

선생님은 동생 아랑이를 칭찬했다.

그렇게 했어야 마땅하다고.

하지만 하랑이의 마음도 함께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온 아랑이를 꼭 안으며 물었다.

“너희 반 아이들인데

그렇게까지 하는 게 괜찮아?”

아랑이는 조용히 말했다.

“그냥 반 아이들이야. 내 친구는 아니야.”

친구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니 괜찮다고 했다.

아랑이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감히 우리 형을 건드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조금 늦게 집에 온 하랑이는 아랑이에게 말했다.

고맙기도 하지만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형의 편을 들었던 동생은 그날 조금 슬퍼 보였다.

나 역시 고마우면서도

왠지 마음이 저린 날이었다.


그래도 그날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라 가며

서로에게서 배워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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