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가명)는 하랑이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친구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갈 때쯤
현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먼저 밝게 인사를 건넸고
편의점에서 만나면 서로의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운동장에서 늘 혼자 서 있던 아이.
현우와 친구들이 축구를 할 때면
하랑이는 매번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함께 축구를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럼, 넌 심판해.”
축구를 못하는 하랑이를 피하던 아이들도
현우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하랑이를 끼워주곤 했다.
심판.
공을 차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자리.
오랜만에
하랑이는 친구들 안에 있었다.
5학년이 되던 해,
현우와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전교 임원에 누가 봐도 인싸인 아이였다.
그런데도 현우는
하랑이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
아랑이가 수호에게 그랬듯,
현우 역시 하랑이의 다름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하랑이의 성격쯤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체스를 꺼내 놓던 선생님과 현우 덕분이었을까.
반 아이들이 하랑이를 대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하랑이만의 특성을 그냥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말이 없던 하랑이는 조금씩 말을 꺼냈고
혼자 책을 읽던 쉬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5, 6학년 현우와 하랑이는 2년을 같은 반으로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현우 엄마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학교 엄마들과 교류하지 않는 자발적 아싸인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주말의 어느 날
나는 케이크를 들고 현우 엄마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하랑이에 대해
학교 엄마에게 자세히 이야기한 날이었다.
매번 하랑이가 선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에도
현우는 그걸 거리낌 없이 받아주었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현우 대신 그 엄마에게 감사를 전했다.
현우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특성과 다름이 있잖아요.
선을 지키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 아이에게도 그걸 가르쳐 준 친구가 하랑이었어요.
제가 더 감사하죠.
서로에게 감사한 친구라면
저만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눈물을 참고 있던 나는
결국 현우엄마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우리는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우의 가족 안에도 느린 가족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편이었다.
너무 많은 걸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말 같아서.
하랑이의 모든 행동이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아이가 부모의 거울임을 실감한 날이었다.
현우가 하랑이에게 건넨 말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다.
그냥 친구에게 하는 말이었다.
“같이 하자, 넌 심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