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남겨진 아이

by Eun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상담일이었다.


교사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인사를 건넸다.

교실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괜히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3학년의 좌충우돌이 지나고 4학년이 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다름을 알아가기 시작한 아이,

그런 아이를 처음 맡아본 초임 교사,

그리고 이제야 그 다름을 인정하게 된 부모.

셋 모두 서툴렀던 시간이 지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학년 초에는 아이를 충분히 알아가기 전까지

짧지만 공백 같은 시간이 있다.

그 사이 오해가 쌓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상담일 전 미리 전화를 걸어 아이의 상황을 설명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사이.

설명하기엔 늘 애매한 경계.

오픈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그 질문은 매년 반복된다.

나는 이번에도 먼저 말하는 쪽을 택했다.


상담이 시작됐다.

나는 아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대화는 오갔다.

그런데도

내 설명이 공중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느린 아이를 오래 키우다 보면

부모는 이상하리만큼 공기를 빨리 읽게 된다.

아이가 느린 만큼, 부모의 눈치는 점점 빨라진다.


나는 또 설명했다.

아이의 특성이

양육의 결과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라면서.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치료실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나는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이 아이는 이런 특성이 있습니다.”


그 말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속마음이 따라붙었다.

‘제가 잘못 키운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있습니다.

부디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말이 많고 늘 밝던 하랑이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문제가 되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반 안에서 존재를 줄여가는 아이처럼.

눈에 띄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걸까.

아니면 아이도 이미 지쳐버린 걸까.

나는 아이의 침묵이 또 다른 신호는 아닌지

혼자 오래 고민했다.


그 한 해, 나도 아이처럼

차가운 공기들을 모른 척하며

교사와의 거리를 좁히려 애썼다.

아이 때문에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고,

공교육 멈춤의 날에는

반에서 유일하게 체험학습을 내어 응원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의 보호자였지만

동시에 ‘설명해야 할 부모’이기도 했다.

아이를 설명하면서

나는 나를 설명했다.

누군가의 오해 속에 갇히지 않으려 애쓰며.


2학기가 되던 무렵, 교사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의 현재 상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담임교사는 조심스럽게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권했다.

긴 통화였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말의 속도가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


교내 특수교사도, 병원에서도

가능성이 낮다고 했지만

아이는 특교자 선정이 되었다.

장애등록은 되지 않지만

특교자는 되는 아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아이.

또 하나의 경계 안이었다.


그러나 도움반은 정원이 초과되어

아이는 내려갈 수 없다고 했다.

완전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일반반에 남아 있는 특교자가 되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힘든 아이들을 왜 일반학교에 보내냐고.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일반학교 도움반조차

쉽게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아이들은

늘 경계 위에 서 있다.

설명해야 이해받고,

증명해야 보호받는다.

그리고 그 옆에 선 부모 역시

같은 경계 위에 함께 서 있다.


그동안 나는 늘 아이를 끌어올리려 했다.

남들의 속도에 닿게 하려고.


하지만 그해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의 속도는

내가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아이의 속도를 밀어붙이는 대신
그 옆에서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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