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한마디

by Eun

숨을 고를 수 있었지만

숨 쉬기 쉬워진 건 아니었다.


하랑이는 그날도

아침 내내 고성을 지르며 울었다.

과잉행동의 최고조는 늘 아침이었고

등교 전쟁은 매일 반복되었다.


매일 밤 기도했다.

제발 내일 아침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안정제를 먹여 재웠지만

어김없이 힘든 아침은 다시 왔다.


겨우 달래 학교를 보내고

컴퓨터를 켰다.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070-. 학교다.

그 번호만 떠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받기도 전에 숨이 막혔다.

정말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어머님, 오늘은요…”

사소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그 사소함이

나를 이렇게 작게 만드는까.


"죄송합니다.

제가 더 살펴보겠습니다."

입에 붙은 말이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유독 햇살이 밝은 날이었다.

세상은 저렇게나 밝은데

나만 어둠 속에 갇힌 듯했다.


생각이 스쳤다.

이건…

내가 죽어야 끝나는 건가.


아이의 첫 진단일에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꾹 눌러 담아둔 우울이

그날,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크리스천이고

밝은 사람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믿어왔는데

‘자살’이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무서웠다.


그 많은 치료를 해도

이 많은 돈을 써도

아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전화는

평생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
무능력하고 미안한 엄마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도,

결혼도,

육아도.

다 망친 것만 같았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사라지면

누가 가장 아플까.


남편도, 아이도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살아낼 것이다.


단 한 사람

나의 아버지.

평생 나를 자신보다 더 사랑해 온 사람.


어릴 적 작은 상장을 받아왔을 때에도,

첫 교복을 입었을 때에도,

대학 졸업을 했을 때에도,

첫 월급을 받았을 때에도.

늘 나보다 더 기뻐하던 사람.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던

아빠가 많이 울겠지.

내 아버지는 아마 살아내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 했다.

"아빠,

나는 정말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답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은아.

너는 언제나 내게 자랑스러운 딸이야.

평생, 단 한 번도

네가 자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어.

지금의 네가

아빠는 여전히 자랑스러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아빠는 그날 내가 어디까지 가 있었는지 알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내가 바닥이라고 여긴 그 모습이

아빠에게는 여전히 자랑이었다.


그건

내 아버지의 음성이자,

하늘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지금의 너여도 충분하다고.

너는 늘 내 사랑이고, 자랑이라고.

그러니 부디 살아 있으라고.

살아내라고.


그 말이

나를 붙들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실은 누구보다 간절히

살고 싶었다.


나는 살아내기로 했다.


그리고 내 아이가 언젠가

세상 앞에서 무너질 때

그 아이가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네 모습 그대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기 위해,


나의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기 위해,


그날,

나는 다시 살아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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