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바꿔버린 아이가 태어났다.

by Eun

9년 차 내셔널브랜드 디자이너.

30대 중반까지 나를 설명해 준 이름이다.


생각만큼 멋있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직업이었지만 나는 일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이 정말 좋아서였는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좋아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곧 “팀장”이라는 나를 한층 더 포장해 줄 이름을 갖게 될 것으로 부풀어 있었다.

경력이 쌓이며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해 팀장이 될 거고 실장이 될 거고 이사가 될 것이다.


그전에 임신을 해야겠다!


지금의 회사에서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쓴 뒤 이직을 해야겠다.

일상에서는 파워 P였지만, 일 앞에서는 완벽한 J였던 나는

임신조차도 하나의 계획처럼 여겼다.


결혼 3년 후 그렇게 이 아이가 내게 왔다.


결혼 전부터 이 아이를 사랑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멋진 일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일상을 나는 꿈 꾸고 있었다.


출산 5개월 전 회사를 그만두고 태교에 전념했다.

아이를 낳고 몇 개월 후엔 복직을 해야지.

나를 찾는 회사도 나를 원하는 상사도 많을 테니

두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없는 시간이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고, 아이에게 좋다는 음식을 먹으며

입덧도 심하지 않은, 유별나지 않은, 평범한 태교의 시간.


미래의 의사가 될지도, 교사가 될지도, 법조인이 될지도 모를 내 아이.

나를 더 멋지게 만들어 줄 또 다른 ‘이름’을 기다리며 행복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다.

신생아실에서도 조리원에서도

가장 예쁘고 작았던 소중한 내 아이.

나의 자랑이 또 하나 생겼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내 모든 사랑인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이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시간은 불과 2주 만에 끝이 났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

심장 잡음이 들린다는 말, 수술 이야기가 이어졌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들 속에서

나는 내가 상상했던 미래와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는 걸 느꼈다.

산후조리를 마치기도 전에 나는 대학병원에서

수많은 의사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건, 내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가 아니었다.

매번 최악의 말들을 무표정인 채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의사들을

몇 주에 한 번씩 마주쳐야 했다.


“이제 복직해야지? 우리 회사로 와.”

한때는 자주 울리던 전화벨이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졌다.


그렇게 명함 속에 적혀 있던 내 멋진 타이틀이 사라졌다.


대신 남은 이름은 누군가의 엄마.

아니, 많이 아프고 아주 느린 아이의 엄마였다.


나의 이름을 바꿔버린 아이가,

하랑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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