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자라던 아이의 시간

드. 디. 어. 내게도 평범한 날들이 허락된 줄 알았다.

by Eun

하랑이는

그들이 말했던 그대로 천천히 자랐다.


다른 아이가 돌 즈음 걸을 때,

하랑이는 열아홉 달이 되어서야 첫 발을 떼었다.


다른 아이가 엄마, 아빠를 부를 때

하랑이는 말하지 못했고,

조잘조잘 말을 쏟아내던 또래들 사이에서

한 마디씩 더듬더듬 겨우 말을 꺼냈다.


하랑이의 세상은

모든 것이 느렸다.

그럼에도

하랑이는 조금씩 자라났다.


그리고 돌 무렵,

두 번의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던 말은

시간이 흐르며 어느새 사라졌다.


수술 없이

때마다 ‘추적 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누군가는 기적이라 했고,

누군가는 기도의 응답이라 했다.


하랑이 수술비로 모아 두었던 돈을 심장재단에 기부했다.

특별한 뜻이나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

신이라는 존재가 이 아이를 조금 더 봐주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나를 조금 더 안타깝게 여겨주지 않을까.

그러면

수술 없이 심장이 나아졌던 것처럼

하랑이의 속도도 다른 아이들과 같아지지 않을까.


기도였는지, 신과의 거래였는지

이름 붙일 수 없는 뒤섞인 마음을 가진 채로

그렇게 기꺼이 내놓았다.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수술비 지원을 받은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할머니가 보낸 편지였다.

그로 인해 내 아이가 살았다고. 고맙다고.


하랑이 덕분에 두 아이가 살았다.


그 순간

이제는 내 아이가 살아날 차례라고 믿었다.


“네가 좋아하는 돈,

네가 사랑하는 자녀,

네가 네 것이라 믿고 있던 그것들을

이제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거라.”

신의 음성이었는지,

그저 가슴 깊이 울린 나 혼자만의 해석이었는지 모를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 이제 드디어

병원에서 멀어지고 느림에서도 벗어나

우리만의 일상을 되찾는구나 싶었다.


그 시기,

하랑이와는 다른

아주 평범한 아이,

둘째 아랑이도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렇게도 바라던

참 평범하고 무난한 날들이 이어졌다.


앞으로도

이 시간들이 계속될 거라 믿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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