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느 유치원 나왔니?"
"나? 유치원은 나온 적 없고 주일학교 출신인데?"
"주일학교가 뭐야?"
"응, 일요일마다 교회 가면 유치원처럼 노래도 하고 율동도 하고 성경말씀도 배워."
"아! 그럼 너는 교회 유치원을 다녔구나."
"아니... 유치원 아니고 주일학교라니까."
김여사는 주일학교 출신이다.
교회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꿋꿋이 주일학교를 다녔다.
학생회를 다니고 청년부를 다니고 같은 신앙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도 여전히 그 교회라는 틀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교사를 해본 경험이 있나요? "
"네."
"저희는 경력이 좀 있는 교사이면 좋겠는데."
"저는 주일학교 교사를 오랫동안 했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했으니 경력은 어마하지요."
"아~교회 교사요..."
"네. 누구보다 좋은 교사가 될 자신이 있어요."
김여사는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면접을 보았다.
사회생활의 경험은 없었지만 주일학교 교사의 경험은 어마무시했으니 어린이집 교사를 못하리란 생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시장골목이 들썩 거렸다.
김여사네 교회 교사들이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시장골목을 들쑤시고 다녔다.
토요일에 미리 심방을 해 놓았으므로 아이들과 약속 장소에서 픽업만 하면 되었다.
그래도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기면 전화를 돌리거나 직접 깨우러 그 집으로 쳐들어 가기도 했다.
평소에 부모들과도 관계를 형성해 놓았기 때문에 안방까지 쳐들어 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열정 넘치는 교사들은 골목을 나누어 아이들을 데리러 다녔다.
골목마다 교회 봉고차가 상시대기하였고 다른 교회 차들과 엉기어 아이들을 태우러 다녔다.
한마음 한뜻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신평 시장통 골목을 휩쓸었던 시절이 있었다.
교사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차량으로 골목마다 함께 다녀주신 박집사님.
(지금은 천국에서 안식하고 계시지요? 선한 미소가 생각이 납니다.)
김여사를 따라다니며 아이들을 픽업해 준 그녀의 남편.
토요일 귀한 시간을 내어 기꺼이 아이들 심방에 나서준 현숙, 명숙 자매선생님.
(데이트할 시간을 주지 않은 탓인지 노처녀가 되어버렸네요.)
그리고 열정이 식지 않았던 열차선생님은 주일학교를 이끌어 나갈 다음 주자 부장선생님이었고
김여사와 이여사는 주일학교를 이끌어 가는 축이었다.
그리고 많은 학생선생님들이 보조를 해 주어 그 주변에서 주일학생이 가장 많은 교회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러면 큰일 난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아이들도 무척 바쁜 세상이 되어버렸다.
부모들은 아이들만 교회 보내는 일을 걱정스럽게 여기고 아이들은 공부와 가족 간의 시간에 더 집중을 한다.
사회현상이 그렇다 보니 지금은 주일학생들이 없는 교회가 태반이다.
은희는 김여사가 어린이집에 근무할 때 전도한 아이였다.
6살인가 되어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손에 자란 아이는 김여사를 따라 교회에 나왔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어린이집 교사가 되어 직장 생활을 한다.
물론 이 아이는 주일학교 교사를 겸하고 있다.
은희의 할머니도 지금은 신실한 성도가 되어 함께 교회를 다니고 있다.
주일학교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껴안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의 문제를 주일학교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일학교를 추천하고 싶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주일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보라.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줄어들 것이고 마음이 병든 아이들이 위로를 받게 될 것이며 옥상 꼭대기로 올라가는 아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기 전에, 자신의 동굴 속에 갇힌 은둔형 아이가 되기 전에 Sunday school로 내 보내야 한다.
믿음과 사랑만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일요일마다 열리고 누구나 갈 수 있는 주일학교.
그 학교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