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였다 낚였어!

by 꿈꾸는 덩나미

더위에 비지땀을 흘리며 점심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입주민에게 알립니다. 순창에서 올라온 더덕고추장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104동 계단 밑으로 오셔서 받아 가세요. 돈은 안 갖고 오셔도 됩니다. 더덕고추장 홍보하기 위해 무료로 샘플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40분까지 오세요."


창문을 열어 둔 까닭에 마이크 소리는 아파트 깊숙이 울려 퍼졌다.

김여사도 평소에 애용하는 고추장인지라 무료로 나눠준다는 말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잖아도 고추장을 사 먹는데 더덕고추장이라니 맛있겠는걸... 한번 가 볼까?'

사람들이 많이 오겠지 싶어 서둘러 나갔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없었다.


홍보 차량들이 골목으로 다니며 사람들을 모았고 먼저 온 사람들은 땡볕에 한 줄로

서서 기다렸다.

다들 김여사보다는 연배가 있어 보였지만 아무도 짜증 내지 않았다.

무료로 얻어가는 주제에 이까짓 땡볕에 짜증을 내면 염치가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아! 저는 다음 달에 출시될 더덕 고추장을 홍보하러 온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집중해 주시고 대답도 잘해 주시면 오늘 귀한 선물을 많이 드리겠습니다."

아저씨의 몸에서 땀 냄새가 훅 피어올랐다.

'이 땡볕에 얼마나 돌아다녔으면...' 하는 생각에 김여사는 좀 짠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검은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더니 삥 둘러 서라고 했다.

"오늘 5가지 선물을 드립니다. 첫 번째, 이것은 밥주걱인데 옥 성분이 들어가 밥알이 붙지 않고 깔끔해요. 쌀통에 넣어두면 쌀벌레도 생기지 않고...."

"와~아!!"

사람들이 감탄사를 남발하며 리액션을 했다.

김여사는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응? 이건 지난번에 다이소에서 산 것과 같아 보이는데...'

"두 번째 선물은 10가지 잡곡이 들어간 한 끼 먹을 량의 잡곡입니다...."

한주먹도 되지 않는 잡곡봉투를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어쨌든 공짜로 준다니 감사히 받았다.

"세 번째는 더덕 씨앗인데 뿌려서 키워보세요."

"어디다 키워요?" 챙모자를 쓴 할머니가 아저씨에게 질문을 했다.

아저씨는 사뭇 짜증 난 톤으로 "알아서 키우세요."라고 말했다.

"화분에 키워도 되나요?"

"그럼요..."


"네 번째는 6년 근 인삼농축액인데 많이들 드셔 보셨죠?"

엥? 저것도 준다고? 비쌀 텐데...

아니나 다를까 59만 원짜리니 어쩌니 하더니 작은 아이스크림 나무 끝에 한번 찍어 먹어보라고 준다.

"이것을 39만 원에 드립니다. 6개월 무이자할부로 드려요. 지금 돈 없이 나온 거 알아요. 떼먹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지금부터 아까 받은 주걱을 들고 금산!이라고 외쳐주세요. 제가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공짜인 줄 알고 큰 소리로 금산을 외쳤다.

김여사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맑고 큰 소리로 "금산!"이라고 외쳤다.


그 아저씨는 주걱을 다시 모아 사람들을 지명했다.

"이것은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한 대가를 조금만 받는 것입니다. 거기 사장님, 이거 드리면 떼먹지 않으실 거죠?" 그러자 지명당한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차량 쪽으로 지명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김여사는 그때 알았다.

'음... 낚였군 낚였어.'

그래도 고추장은 받고 싶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김여사에게도 "이거 받으시고 돈 떼먹지 않을실거죠?"라고 물었다.

김여사는 당황하여 "음..." 하고 대답을 뭉그적거리자 아저씨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그러시면 안 되죠?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뭐라고 대답을 한 것도 아닌데... 돈을 떼먹을 사람으로 보였나?


살 마음도 없었지만 목돈인데 생각할 시간은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김여사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검은 봉지를 던져 버리고 가고 싶었지만 땡볕에서 기다렸던 게 아까워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 고추장을 받지를 않았다.


아저씨가 하는 모양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자니 가지 않고 옆에 서 있는 김여사가 부담스러운 듯 마지못해 고추장 하나를 김여사의 봉지에 담아주었다. 그러더니 "이제 가 보세요. 가도 돼요."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김여사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처음부터 고추장 샘플을 받아가라고 해서 왔는데...

자기네도 고추장 홍보를 위해 왔다고 하더니...

홍록정인가 뭔가를 사지 않는다고 사람을 이렇게 무시하다니...

결국은 고추장을 미끼로 홍록정을 팔기 위한 상술이었다 싶으니 화가 났다.


김여사는 그날저녁 남편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

"낚였군 낚였어. 세상에 공짜 봤어?"라고 말했다.

"아니... 공짜를 바란게 아니라 출시를 하기 전에 샘플을 맛보라고 해서 나간 거지."


그나저나 갑자기 목돈 들여 홍록정을 산 사람들은 어떡해야 하나...

요즘도 이런 상술이 통한다니...

토요일 연재
이전 06화Sunday sch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