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배틀

자랑은 교만에서 시작된 것이다.

by 꿈꾸는 덩나미

잘 차려입은 여인들이 카페 한편을 점령한 채 수다를 떨고 있다.

저마다 훈장처럼 명품백을 의자에 걸쳐두고 손톱은 보석처럼 빛을 발했으며 속눈썹은 부채처럼 펄럭였다.

그녀들의 수다의 주제는 해외여행이었다.

신여사가 지난주 보이지 않더니 해외여행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이여사:"이번에는 어디로 갔다 오셨어요?"

신여사:"가족끼리 베트남을 다녀왔어요. 너무 재밌고 좋았어요..."

이여사:"그래요? 저희는 지난달 유럽을 다녀왔는데 이번 추석에는 동남아를 갈까 봐요. 어디가 좋던가요?"

신여사:"글쎄요? 베트남도 좋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필리핀이 좋은 거 같아요?"

박여사:"필리핀은 치안이 좀 위험하지 않아요? 난 필리핀은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아요."

저마다 자신들이 다녀온 나라들을 자랑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 무리 속에 김여사가 앉아 커피만 꾸역꾸역 마시고 있었다.

김여사는 남편이 직접 만들어준 가방을 등뒤로 돌려놓고 그녀들의 이야기에 신나 죽겠다는 듯이 리액션을 했다.

김여사:"그래서요? 어디가 제일 좋았나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셨나요? 물가가 비싸던가요?"

해외라고는 전혀 나가본 적이 없는 김여사는 이렇게 따분하고 재미없는 자리도 처음이었다.

김여사:"어머! 좋았겠어요... 유럽은 얼마나 좋았을까... 베트남도 좋다던데..."

그녀들이 한 시간 가까이 해외여행 다녀온 수다를 떠는 동안 김여사는 커피를 다 마시고 말았다.

김여사:"자몽 에이드 하나 더 주세요."


박여사:"그 집 아들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박여사가 이여사를 향해 말을 하였다.

김여사:'뭐야? 이제 자식 이야기가 시작된 거야?'

이여사:"네, 곧 며느리를 볼 것 같아요. 아이가 똑똑하고 예뻐요. 유치원 교사인데 얼마나 상냥한지..."

김여사:"어머! 좋으시겠다. 부럽네요."

그러자 또다시 박여사가 나섰다.

"우리 사위도 이번에 회사에서 과장으로 진급을 했어요. "

강여사:"축하해요... 우리 딸은 곧 사업을 확장한다고 하네요."

금여사:"어머나! 다들 좋은 일만 가득하시군요. 우리도 두 달 후쯤 손주가 태어나요. 축하해 주세요."

그녀들의 수다는 처음인 듯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김여사:'이런 젠장! 다른 집 자식들은 이렇게 술술 잘 풀리고 잘 사는데 우리 집 새끼들은...'

김여사는 애인 하나 없는 모태 솔로인 자식들이 떠올라 짜증이 났다.


머리도 어지러웠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몇 시간째 듣고 있다 보니 시간이 아깝기는 했지만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혼자 자리를 박차고 나올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김여사:'이번에는 또 어떤 주제로 넘어가는지 보자고. 언젠가는 자리에서 일어나겠지...'


아니나 다를까 주제가 바뀌었다.


최여사:"이번에 우리가 이사를 했잖아요? 살림살이를 새로 들였더니 수천만 원이 들었어요.

앞전에 쓰던 것도 거의 새 거였는데 그래도 새집에 새 물건이다 보니 좋긴 좋네요."

금여사:"우리도 이번에 소파를 바꿨는데 천만 원 주었어요."

김여사:"헐~~~~"

김여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뱉었다.

김여사:'무슨 소파가 천만 원이나 하냐?'

금여사:"수입품이다 보니 뭐..."


그녀들은 그렇게 오후 내내 카페를 점령한 채 자기 자랑 배틀을 하였다.

물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배틀이었지만 김여사만이 넉다운이 되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김여사:"우리도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집이 온통 편백으로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어요. 우리 돈 한 푼도 안 들이고 하나님이 가장 완벽한 집으로 주셨어요."라고 한마디를 했다.

처음으로 자랑질을 한번 해 보았는데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부러운 얼굴들이 아니라 뭐지? 하는 얼굴로 김여사를 바라보았다.

'아! 실수... 그녀들에게 이런 건 관심거리도 아닐 텐데...'


그녀들은 모두 교회에서 우아하기 짝이 없는 권사들이었다.

요즘 권사는 재력으로 뽑는 건지 미모순으로 뽑는 건지...


그날저녁 집으로 돌아온 김여사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만들어준 이 가방 정말 튼튼하고 편리해서 좋아. 물건도 많이 들어가고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이라 더 좋아. 고마워... 그리고 아이들이 결혼을 좀 늦게 하면 어때? 일찍 결혼해서 이혼하는 것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며느리가 들어와서 둘이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행복하게 살면 바랄 게 없지 뭐.

우리 집 패브릭 소파는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지만 아직 쓸만해... 나중에 필요하면 바꾸면 그만이고..

그까짓 해외여행도 언젠가 가 볼 테지..."


주여!

자랑하는 혀에 재갈을 물리소서.

겸손하고 온유한 심령으로 자신보다 남을 섬기며 돌아보는 권사들이 되게 하소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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