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by 꿈꾸는 덩나미

꽃밭을 다녀왔다.

지인의 지인이 카페와 식당과 꽃가게를 하는데 재고 파악을 해야 한다고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런 줄 알고 가게 되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카페라 하여 바람도 쐴 겸 겸사겸사 설레며 간 것이었다.

정말 한 건물 안에 식당과 카페와 꽃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물건도 공간에 떠도는 공기도 생기가 없게 느껴졌다.

"이런 곳에 장사가 될까?" 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곳은 영혼들의 안식처인 수목장을 하는 공원이었다.

적잖이 당황하게 되었다.


예고 없이 영혼들의 안식처에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꽃들도 생화가 아닌 생화보다 더 알록달록한 조화들이었다.

카페에는 잠든 이들을 찾아오는 그들의 가족들이 드문드문 들어올 뿐이었고 식당은 하루 종일 손님들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다 한두 명 정도...

어디선가 향 냄새가 스며들어 이곳이 산자들의 땅이 아니라 죽은 이들의 땅임을 은연중 알려 주었다.

죽은 자들을 위해 산자들이 그곳을 지키며 돌보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간 지인이 자신의 자동차로 그곳을 한 바퀴 돌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온 언덕이 사방팔방으로 꽃밭이었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 감탄과 함께 알 수 없는 괴이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온 언덕을 휘감아 피어 있었다.

이 정도 되면 냄새에 질식할 듯도 하건만 다행히 향기가 없었다.

죽은 이들처럼 이 꽃들도 향기를 피우지 못하는 죽은 꽃들인 것이었다.

온 산을 가득 채운 꽃들이 잠든 이들의 수를 짐작하게 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 세상을 살다 돌아가신 것이었다.

간혹 <예약>이라 쓴 팻말도 보였다.

사랑하는 가족 옆에 눕고 싶어 미리 그 땅을 분양받아 놓은 것이었다.


향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나무 크기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고 하니 죽어서도 꼭 공평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지 돌아가신 망자들 앞에 서니 숙연해짐을 느꼈다.

그들이 살다 간 세상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한평생 누군가의 가족으로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들로

힘쓰고 애쓰지 않았을까.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한평생 살아왔을 그들의 삶이 짐작되었다.


<다들 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평안히 쉬십시오.>

나와 전혀 일면식도 없는 망자들 앞에 그렇게 인사를 드렸다.

나의 미래도 당신의 미래도 이것이다.

우리 육신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은 천사처럼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음은 슬퍼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지 않을까?

단지 남은 자들이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무엇인가 표식을 남겨 위로를 받고자 한다.

그래서 꽃을 들고 죽은 이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꽃은 죽은 자를 위한 꽃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자신을 위한 꽃이기도 한 것이다.


잠든 이들 앞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다시 느끼고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주문처럼 나 자신에게 다짐을 해보았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 말자.>

<남에게 조금이라도 아픔을 주는 삶은 살지 말자. 그랬다면 빨리 화해하자.>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또다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보며 그 언덕을 내려왔다.

꽃들이 지천인 그 언덕에 망자들이 쉬고 있었다.


이전 10화엄니! 그 바다에 잘 도착하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