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병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셔본 경험도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막걸리를 마셔보고 싶은 충동이 자꾸 일어난다.
그까짓 거 사서 마시면 될걸 무슨 고민씩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술에 대해 그다지 관대하지가 않다. 오랫동안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 스스로 절제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잘 지켰고 그러다 보니 술과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요즘은 신앙인으로 살아도 할거 다 하고 사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여전히 그 율례와 법도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그런 내가 마트에 가면 막걸리코너에서 발길이 멈춘다.
어릴 때 아버지 술 심부름으로 몇 번 막걸리를 사다 드렸고 오는 중에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마셔본 경험도 있다.
그래서 그 달콤하면서 알딸딸한 맛을 내 몸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맛을 알기에 그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어느 날 막걸리 한 병을 카트에 슬쩍 담고 말았다.
누가 볼까 싶어 다른 물건 밑에 숨긴 채로 계산을 하고 다시 가장 아래에 넣어 집으로 돌아왔다.
막걸리를 냉장고 깊숙이 숨겨두고 언제쯤 마실지 고민을 했다.
가족들이 다 잠들고 난 후 깊은 밤 혼자 마셔봐야지...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막걸리를 사 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유통기한이 남아 있었다.
내일은 꼭 마셔봐야지...
결국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지나 싱크대에 버려졌다.
나는 이 짓을 두 번 더 했다.
그리고 이제는 막걸리를 사 오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도 가끔씩 막걸리를 사고 싶은 충동은 여전히 일어난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농번기가 되면 종종 막걸리 심부름을 하였다.
그때 몰래 맛본 막걸리에 취해 아버지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항상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타나곤 한다.
나에게 막걸리란 아버지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또다시 나는 막걸리 코너에서 어정쩡하게 서성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한병 사서 마셔봐야 내 마음이 치유가 되려나 보다.
그리운 아버지... 그리운 내 고향... 그리운 꼬마숙녀...
이 그리움은 아무래도 병인가 보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짙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