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저축하듯이 살아온 날들이 모여 어느새 주름이 훈장처럼 빛나는 나이가 되었다.
아기 때도 있었고 사춘기 청소년 때도 있었고 마음에 불이 일었던 청년의 때도 있었다.
참으로 교만하기 짝이 없었던 젊은 날들이 훅 하고 지나갔다.
지금의 나는 삶에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갔다.
자존심, 편협한 마음, 시기와 질투, 욕망, 판단하는 버릇...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남은 건 너그러움과 이해심,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이 들으면 내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쯤 되는 줄 알겠지만 여전히 내속에서 빠져나간 것들이 다시
자리를 잡으려 할 때도 많음을 고백한다.
오늘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다.
너무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순간적으로 마음이 상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머리모양과는 영 딴 판인데...'
'에~이, 잘 손질해 보지 뭐. 잘 매만지면 괜찮아질 거야...'
내 속에 두 가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후자를 택했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마음도 편했고 오랫동안 다닌 미용실을 바꾸지 않아도 되었다.
혹자는 그리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예요.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야기를 해서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야지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속에 그럴 에너지가 있다면 아껴 두었다가 더 창조적인 일에 쓰고 싶었다.
작년오늘 그녀가 한평생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떠난 날이다.
사람들은 첫 제삿날이라며 그녀가 살던 집에 모일 것이다.
나는 가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살아서는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수시로 쫓아 내려갔던 길이다.
그들은 몇 년간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제삿날이라며 모여 음식을 차린단다.
그녀가 그리도 보고파했던 그들이 제삿날에 모여 얼굴을 보인다니 너무 화가 난다.
살아서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할까?
그것이 매일매일의 숙제이다.
그래서 항상 오늘을 마지막날처럼 살아가고자 애를 쓴다.
아이들에게도 수시로 사랑을 전한다.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더라도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손해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도록 사랑하며 살다가 죽고 싶다.
내가 떠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아! 참 좋은 사람이었지...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지... 하나님의 사람이었지...>
라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오늘 이 밤에 내게 또 숙제가 던져졌다.
그녀의 제사상 앞에 모인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한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