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렸다.
퇴근길에 하늘에서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빛나는 첫눈이 가로등에 반사되어 마구마구 쏟아져 내렸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목도리로 휘감은 머리에도 흰 눈이 살포시 쌓였다.
가방 안에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우산을 재빨리 꺼냈다.
낭만을 즐기기에는 눈의 양이 너무 많아 내가 눈사람이 될 판이었다.
찍은 사진을 자랑하듯이 부산의 친구에게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흰 눈? 첫눈? 이라며 답장이 왔다.
너희는 이런 즐거움을 모를 거야 펑펑 쏟아지는 눈을 퇴근길에 만나봤어? 하는 나의 자랑질이 발동한 것이었다.
첫눈이라는 단어가 청초하게 느껴진다.
처음이라는 이 단어가 다음을 더 기대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열매... 첫 내 집... 첫 직장...
처음은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가슴을 두군 거리게 하고 설레게 한다.
오늘 첫눈이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은 예감으로.
3살짜리 서준이와 대화를 했다.
선생님: "넌 이제 겨우 세 살이지? 너 내 앞에 까불지 마.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서준:"나이가 많아?"
선생님:"그래. 넌 언제 내 나이가 될래? 난 다 지나왔지만 넌 아직 멀었어 ㅉ ㅉ"
서준:"........."
선생님:"가소로운 것. 어려도 한참 어린것이 까불고 있어."
옆반 선생님:"무슨 말이야? 아이랑 무슨 말하고 있어?"
서준, 선생님:"..............."
스쳐 지나온 많은 시간들이 있었다.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최선을 다했고 때로는 현실에 굴복하기도 했었다.
누군가 내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무래도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별 뾰족한 다른 삶을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차라리 다시 태어난다면 부요하고 사랑 듬뿍 받는 집안의 딸로 태어나고 싶기는 하지만.
나는 내 속의 순수한 마음을 잃고 싶지 않다.
눈이 오면 눈을 즐기고 세 살짜리 아이를 보며 내 살아온 날들을 감사하고
그리고 실타래처럼 얽힌 현재의 삶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삶에 즐거움과 행복만 있다면 좋겠지만 슬픔과 고통을 함께 주신 신의 의도를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온실 속의 화초는 차가운 외부의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시들고 만다.
그러나 척박한 자연 속에서 비바람을 이겨낸 화초는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법이다.
첫눈을 맞으며 이런저런 상념 속에 빠져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