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흔들린다.
아직 감기 기운이 다 가시지 않았지만 분명 어제 보다는 컨디션이 한결 나아졌다.
어느새 일주일째 아픈 몸을 껴안고 하루하루를 흔들 다리 건너듯이 살아가고 있다.
연차라고 주어진 이 시간을 감기와 싸워야 하는 나 자신이 어째 처량하다.
남들은 힐링이니 뭐니 하면서 먹고 마시고 휴식을 취하는데...
이 아까운 시간을 감기에게 온전히 내어줘 버렸다.
감기는 만만치 않은 기세로 나를 장악했다.
나는 패잔병처럼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으며 감기를 얼르고 달래며 내게서 떠나가기를 간청하고 있다.
하루하루 쇠약해져 가는 육체를 바라보며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까짓 감기쯤 이라며 내 젊음을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감기는 병이 아니었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쯤으로 여겨지던 그 시절...
어디가 아파도 며칠 참고 나면 스스로 치유가 되었던 나의 젊은 날...
그 시절이 다 지나갔나 보다.
이제는 감기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결코 아니다.
나를 주저앉게 하고 몇 날 며칠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태풍이 되어 버렸다.
<너의 젊음을 자랑하지 마라 머지않아 흰 서리가 너의 지붕이 될 터이니>
시간은 왜 고장도 나지 않는 것일까?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어둠이 내려앉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일 년이 되고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된다.
반복되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일까?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먼지처럼 사라져 가는 게 인생일까?
사람들은 영원을 갈구하고 죽음이 끝이라고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다.
이 우주가 우연히 생겨났고 그 속에 사람도 우연히 생겨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지혜란건 끝이 없다.
그 지혜가 이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가고 인간이 만들어낸 AI가 인간을 정복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그 지혜는 원래 신의 것이 아니었을까?
신이 이 우주너머 어딘가에 있다면 말이 된다.
우리의 죽음도 우리의 영원함도 우리가 누리는 이 고장 나지 않는 시간이란 것도. 그리고 교만의 끝인 그 지혜란 것도.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불교의 윤회사상을 좋아한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인간이 다시 다른 무엇인가로 태어나고 죽고 또다시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어떤 이는 인간이 무력해서 초월적인 그 무엇인가를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신을 만들어 냈다고 하지만
나는 신이 인간을 만들었고 이 우주를 만들었고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믿는다.
그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기에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지혜롭고 창조주처럼 무엇인가를 만들어 지배하기를 좋아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리는 신이 아닌 피조물이다.
끝이 정해져 있고 감기에도 쓰러지는 연약한 존재이고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인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한해를 허락하신 신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언제든지 불러가셔도 감사할 것 같다.
감기에 헤매고 있지만 영원히 살지 못할 것을 알기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작년한해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내 남은 삶을 잘 살기 위해 죽음을 고민했어야 했다.
삶과 죽음은 항상 같이 손잡고 다니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죽음은 삶을 이끌어가고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어쩌면 그 둘은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삶의 완성은 죽음이었고 죽음의 끝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다 보니 조금은 평안한 마음으로 삶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육체의 연약함도, 재정의 결핍도, 자녀의 미래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남은 삶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오늘까지 살아온 것은 분명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나를 살아있게 하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나의 남은 삶에도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