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그날이 왔다.
내게 선물처럼 주어졌던 365일이 지나가고 새로운 365일이 또 시작되었다.
그다지 반갑지도 않지만 안 반가울 수도 없으니 참으로 모순적이다.
누군가는 이 새벽에 친구들과 산꼭대기에서 떠 오를 해를 기다리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느라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 것이고(작은아들)
누군가는 교회에 모여 앉아 성찬식을 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준비할 것이다.
(큰 아들)
그런데 나는 감기로 끙끙 대다가 약을 한 줌 입에 털어 넣고 소파에 널브러져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일 년의 6개월을 감기와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됐다.
이것도 직업병이리라. 아이들이 코 앞에 와서 기침을 해대니 감기를 피할 방법이 없다.
씩씩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와야 말이지...
마스크를 쓴 채로 신년예배를 드리러 가서 눈만 겨우 내밀고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했다.
새해에는 많이 웃어주고 많이 사랑을 표현하자는 어느 성도의 말에 공감은 하지만 내가 마스크를 벗고 당신에게 미소를 날리는 순간 당신도 나처럼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될게 뻔해서...
미안하지만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베풀 수 있는 배려임을 알아주세요...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새해는 나에게 아무것도 선물해 주지를 않는다.
그저 365일이라는 시간만을 던져 주면서 하루가 얄짤없이 또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받은 선물이 있긴 하다.
이놈의 나이...
언제부터인가 나이가 드는 것이 부담스럽다.
나이에 걸맞은 행동과 마음가짐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모아둔 돈은 없는데 정년퇴직이라는 라인에 걸려 먹고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하긴 여태껏 살아온 나의 삶이 어디 내 뜻대로 다 이루어졌나?
동아줄처럼 부여잡고 살았던 것은 믿음이었다.
그분에 대한 신뢰... 믿음...
그것은 내 인생의 등불이었고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가 갈 것이다.
부요하지 않았지만 거짓 없이 신실하게...
고난과 역경도 많았지만 나를 등에 업고 여기까지 오게 하신 그분...
나의 마지막 여정도 인도하시고 함께하실 그분...
2026년을 기꺼이 맞이한다.
혼자라면 두렵고 힘들겠지만 그분이 옆에 계시고 붙들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선물처럼 주어진 365일을 아끼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당신과도 만나게 되겠지...
그때에는 내가 진심으로 바라고 바라던 선물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겠지.
시간은 멈추어지고 참 자유와 평안이 나에게도 주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