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라는 나이를 신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헉!
너무 익숙하지 않은 나이다.
빨리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올 때는 어른이 되는 기분이 들어 좋았었다.
40대에서 50대로 넘어올 때 마음이 안정되고 평안이 일어나 좋았었다.
하지만 50대에서 60대로 넘어올 때는 왠지 노인 아닌 노인 느낌이 들면서 <이제 인생
무대에서 서서히 퇴장을 준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서글퍼졌다.
아직 육신은 멀쩡하고 마음은 30대, 40대 못지않은데 내 생물학적 나이가 예순이라니...
이직을 하고 싶어 이력서를 넣었다.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문자를 날려 보았다. 면접을 한번 보면 안 되겠냐고...
40대의 젊은 사람을 원한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 사람들은 젊은 사람을 더 선호하지... 그럼 뭘 해야 하나?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정쩡한 나이가 아닌가?
사람들은 인생이 예순부터라고 심심찮게 이야기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
어려서 신에게 그렇게 기도했었다.
<나를 너무 오래 살게 하지 마시고 예순이나 그 중반까지만 살게 해 주소서>라고.
그래서 그랬을까?
너무 많이 아팠다.
감기로 몇 달을 고생했고 지금도 여전히 기침이 수시로 올라온다.
이것은 그때의 내 기도를 들으신 신의 싸인이 아닐까 싶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래, 그분이 부르시면 기꺼이 순종해야지 뭐.
나는 죄가 있다.
그것은 내 삶을 사랑하지 않은 죄이다.
나는 삶 못지않게 죽음을 동경했고 삶을 등한시한 경향이 있다.
누군가에게 절실한 이 하루를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시간만 흘러 보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신 앞에 서게 된다면 내가 허투루 보낸 시간들에 대해 책망을 받을 것 같다.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숙제가 매일 있다.
흘러간 시간은 어쩔 수가 없겠지만 내게 남은 삶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을 아끼고 때를 아껴 사용해야 한다.
먹고도 살아야 하고 사람으로서 신에게 그 본분을 다해야 하고 이웃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이 숙제를 열심히 하다 보면 내 삶의 끝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생!
한나절 소풍처럼 짧지만 강렬한 시간이다.
우리는 각기 정해진 시간 안에 살아가면서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알게 모르게 이루며 살아간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건 분명 신의 뜻이 아닐 것이다.
너로 인해 내가 행복하고 나로 인해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우리의 소풍은 더 즐겁고 그 끝도 행복할 것이다.
분명 우리는 신의 형상을 닮았다.
그래서 인생은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찬란한 것이다.
나이 예순에 점점 깨달아지는 게 많은 걸 보니 신에게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