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식당에서의 알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예순의 인생을 끌어안고 하루 또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은 아흔하고도 두 해를 더 사신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어찌어찌 아흔 해를 넘기셨건만 결국은 요양원에서 병과 몇 년을 싸우다 가셨으니
돌아가심이 어쩌면 복인가 싶기도 하다.
강건하면 칠십이요 팔십이라 했는데 이흔넘겨 사셨으니...
그러고 보면 나의 남은 삶도 그다지 길지는 않겠다 싶어 정신이 번쩍 든다.
이 남은 삶에 후회가 없으려면 어찌 살아야 하나?
시간만 소진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거창한 삶을 꿈꾸기에는 나이가 들었다.
아직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3월이 지나가고 있다.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했는데 무엇이든 해야 한다.
집 근처 대학에서 식당설거지 알바를 구한다고 당근에 올라왔다.
일단 가깝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없을 것이고 몸만 고달프면 되는 일이지 싶어 덥석 전화를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식당일을 해 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다 보면 종종 들리게 되는데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활기차 보였다. 그래서 한 번쯤은 꼭 저 일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꽃봉오리처럼 어여쁜 아이들이 하하 호호 지나간다.
그 아이들의 입에 밀어 넣을 하얀 쌀밥을 배식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영양사가 자꾸만 적게 담으라고
채근을 하고 나는 알겠노라 하면서도 밥이 점점 고봉이 되어간다.
'그래, 공부를 하든 뭘 하든 밥심이지~어여쁜 청년들아! 많이 먹고 힘내어 살아가렴'
나의 염원을 담아 내미는 밥 한 그릇...
밥 푸는 아줌마였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행복했다.
그런데 밥을 적게 담으라는 그들의 말을 조금 있다가 이해했다.
밥은 삼분의 일도 못 먹고 잔반으로 버려졌다.
'그래, 너희들은 부족함이 없는 세대인데 내가 잠시 착각을 했다.. 밥을 적게 담을걸...'
이 정도면 알바도 괜찮다고 생각할 찰나에
"여사님! 이제 설거지팀으로 가셔서 설거지하시면 돼요."라고 영양사가 말했다.
나의 진정한 알바가 시작되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먹은 그릇이 쏟아져 나왔다.
잔반은 야릇한 냄새가 나는 기계 속으로 버려졌고 설거지통은 오염물로 토할 것만 같았다.
애벌 설거지를 끝낸 그릇들은 기계 속으로 들어가 다시 한번 그 몸을 씻어냈고
뜨거운 열기에 멸균까지 마치고 나면 나는 미친 듯이 그 그릇들을 정리하여 옮겨 담았다.
허리가 부서질 것 같고 팔다리는 점점 감각을 잃어갔다.
생기 발랄했던 내 얼굴도 점점 찌들어갔고 벽면구석에 걸려 있는 시계를 자꾸 훔쳐보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진리였구나...
집으로 걸어가는 10분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로망이니 뭐니 했던 말들을 후회하면서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쓰러져 버렸다.
그래도 일주일은 이 악물고 견디었다.
물론 더 견디어볼 수도 있었지만 여기까지였다.
이러다 병원에 한 달은 입원해야 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 일한 일주일 동안 어여쁜 청년들의 예의 바른 한마디는 나의 비타민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이 정도의 대학이라면 이 정도의 예의와 질서가 몸에 배여야지~너희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인데... '
일주일짜리 알바였지만 내 인생의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오늘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대학식당 한 구석에서 열심히 삶을 살아내는 언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수시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가며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아이들 입에 밥을 넣기 위해 애쓰시는 언니들...
우리는 다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며 살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