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꽃구경
그해에는 우리가 너무 서둘러서인지 꽃구경을 할 수 없었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겨울의 찬 기온에 꽃들이 봉오리만 맺은 채 나올 기미가 없어
우리는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 올해는 꽃이 필 시기를 이리저리 잘 알아보고 현지에 확인까지 해본 후 그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남편과 데이트하듯이 떠나온 당일치기의 여행이었지만 묘한 설렘이 일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자유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올해는 그야말로 꽃들이 지천이었다.
날짜를 잘 잡은 탓이라 여기며 꽃보다 더 많아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사람이 꽃인지 꽃이 사람인지 분간이 잘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축제에 진심이었다.
꽃들로 물든 산 능선을 한 바퀴 휘~돌고는 먹거리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어쩌면 이것을 위해 꽃구경을 핑계 대고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실 막걸리와 파전하나를 주문했다.
덤으로 잔치국수까지.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는 크리스천임을 고백하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술이라곤 입에 대어 본 적도 없는 우리 부부가 꽃구경만 오면 슬쩍 막걸리를 사서 마신다.
둘 다 시골 출신이다 보니 막걸리에 대한 추억이 유난히 많다.
어릴 때 농번기에 술 심부름을 하다 슬쩍 주전자에 입을 대고 마셔 보았던 그 달짝지근한 맛을 잊지 못한 탓일 게다.
나는 추억으로 마시고 남편은 평소에 할 수 없던 일을 아내가 저지르니 못 이기는 척 마시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내미는 이브를 거절하지 못했듯이 우리 부부는 그렇게 막걸리를 사서 마셨다.
"여보! 여기 우리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겠지?"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우리를 보고 <권사님! 여기서 뭐 하세요?>라고 아는 사람이 나타나면 너무 민망하겠지?"
"아니면 우리를 아는 사람이 막걸리 마시는 우리를 보고 더 민망해서 피할 수도..."
그렇게 은밀히 막걸리를 시음하며 우리의 꽃구경은 더 달달해져 갔다.
이번에는 산수유 마을로 이동했다.
산수유 마을에도 막걸리가 있었다.
이곳의 막걸리는 때깔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우리는 산수유꽃은 보는 둥 마는 둥 이번에는 다슬기 전이랑 다슬기 수제비, 그리고 산수유막걸리를 시켰다.
분홍색의 막걸리는 뱀의 혀같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머리는 깨어질 듯이 아팠지만 몸은 조금씩 이완이 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대한민국의 각설이들은 이곳에 다 모였는지 구석구석에서 울려 퍼지는 품바들의 노랫가락에
몸치인 내가 춤이 절로 나왔다.(우리는 음주가무에 능한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춤을 춘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막걸리와 각설이와 꽃축제라는 삼박자가 우리를 묘하게 흥분시켰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서야 봄맞이 꽃구경도 서서히 막을 내렸다.
꽃구경이었는지 막걸리 여행이었는지 아리송했지만 무엇이었든 간에 행복한 하루였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제각각 의자 깊숙이 몸을 뉘인 채 집으로 향했다.
내 손에는 매실장아찌와 매실 막걸리 한 병이 자랑스럽게 쥐어져 있었다.
남편이 보고 싱긋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여전히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그분 앞에 섰다.
"나의 일탈을 한 번만 눈 감아 주세요..."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