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의 겨울, 백수의 시간에서 남은 것들

겨울을 건너는 법

by 느린 계절

해고, 그리고 새로운 시간


지난해와 올해, 두 번의 박사과정 지원을 마쳤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예순이 된다.

하지만 이제 나이는 더 이상 나를 규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작년에는 나이를 핑계 삼아 불합격을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감각, 몸과 마음이 동시에 서늘해지는 순간을 그대로 마주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서늘함 덕분에,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느꼈다.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캐나다에 정착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이토록 공부에 매달리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읽기와 쓰기, 때로는 견디기 버거운 시간들. 그

선택들이 옳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최근 나는 두 번째 해고를 경험했다. 분명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뜻밖에도 그것은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박사과정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고, EI를 통해 캐나다 사회의 제도 안으로

편입되는 경험도 했다. 버티고 견뎌온 시간이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고, 상처 입었던

자존심 역시 조금씩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겨울이라는 시간


토론토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 눈보다 먼저 오는 것은 정적이다. 사람들의 말수가 줄고,

도시 전체가 숨을 고르는 듯한 시간. 백수의 시간과도 닮아 있다. 어디에도 급히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자유가 아니라 불안으로 다가온다.

아침에 눈을 떠도 출근할 곳이 없고, 하루를 쪼개는 시계의 압박도 없다. 대신 생각이

늘어난다. 지나온 시간, 선택하지 않았던 길, 그리고 여전히 붙잡고 있는 질문들. 이

나이에, 이 나라에서, 다시 공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겨울은 언제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다. 가장 차갑고 단단한 시간 속에서,

오히려 생각은 맑아진다. 불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남는 것은 결국 아주

단순한 욕망이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무엇을 믿고 살아왔는지를 끝까지 밀고 가보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지금의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남은 시간을

정직하게 쓰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것들


예순을 앞둔 지금, 더 이상 모든 가능성을 붙잡고 살 수는 없다. 대신 무엇을 내려놓을지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안전한 길을 향한 미련, 타인의 속도에

나를 맞추려 했던 오래된 습관들. 그것들을 하나씩 놓아본다.

남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읽고 쓰는 일,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스스로를

끝까지 설명해보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백수의 시간은 공백이 아니라 재정렬의 시간이다.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조용히

방향이 바뀌고 있다. 속도를 줄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듣는다.

그래서 이제 나는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합격과 불합격,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

너머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형태를 상상해 본다.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기에 가능한 방식도 분명히 있다.

이제 나는 내 앞에 놓인 시간을 바라본다.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글은 답이 아니라, 그 질문이 시작된 지점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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