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자신을 다시 쓰는 사람의 기록
요즘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Application status를 확인하는 것이다.
예순을 앞두고 백수가 된 지 벌써 3개월째.
두 번째 박사과정 지원을 마쳤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기다림은 생각보다 정직하게 나를 드러낸다.
백수가 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다.
폭설과 혹한의 토론토 겨울 속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이제야 비로소 여유가 된다.
요즘은 새벽 4시나 5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휴대폰으로 한국 소식을 잠시 확인하거나
미리 정해 둔 하루 분량의 책을 읽는다.
다시 잠들기를 기다리면, 대부분은 또 잠이 든다.
8시 반이나 9시쯤 다시 눈을 뜨고,
이번에는 캐나다 뉴스를 천천히 훑어본다.
보통 10시가 되어서야 하루가 시작된다.
이 느슨함과 여유는
정확히 10년 전, 결혼 후 캐나다에 정착했을 때
처음 경험했던 감각과 닮아 있다.
그때의 여유는 여유가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50대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
그 막연함과 불안이 모든 시간을 덮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여유는
여전히 두렵다.
다만 그 두려움은 예전처럼 막연하지 않다.
멈춰 있는 시간 그 자체를 처음으로 온전히 마주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다.
어쩌면 멈춰 있는 시간은, 원래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멈춰 있는 시간에 대하여
10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간단한 스트레칭과 요가, 그리고 스쿼트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이제는 하루의 리듬을 여는 중요한 의식이 되었다.
일을 하던 시절에는
운동이 늘 주말의 몫이었다.
하지만 백수가 된 후,
아침 운동은 일상이 되었다.
식사 후에는 5분에서 10분 정도
반드시 몸을 움직인다.
이 작은 습관들이 모여
생각보다 단단한 하루를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오후의 유산소 운동이다.
아파트 1층에 있는 작은 헬스장에서
30분 정도 땀을 흘리고,
짧게 근력 운동을 더한다.
이 루틴을 주 5회 정도 이어가고 있다.
캐나다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며
매일 운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신적·육체적 소모가 큰 일을 했던 나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백수가 된 후에야
에너지를 운동에 쏟고,
그 에너지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선순환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몸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안다.
지난 3개월의 변화가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절제와 리듬이라면,
지금 이 글쓰기야말로 가장 크고도 결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그동안 글쓰기는
내게 의무였고, 숙제였고,
그래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백수가 된 후,
글쓰기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달라졌다.
이제 글쓰기는
delight,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는 하나의 gift가 되었다.
예순이라는 나이에 맞이한,
가장 뜻밖이면서도 가장 반가운 변화다.
이 글쓰기를 통해
두려움을 조금씩 길들이며,
이 길고 긴 토론토의 겨울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건너가고 싶다.
백수가 된 시간은
멈춘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쓰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