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 수가 없다〉, 선택지 없는 사람들
백수가 되고 나서야 가능한 시간이 있다.
평일 한낮의 영화관이 그렇다. 작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남편과 함께 토론토 TIFF Lightbox에서 〈어쩔 수가 없다〉를 보았다. 일하고 공부하던 시절에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던 느긋함이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의 토론토는 조용했고, TIFF Lightbox의 어둠은 이상할 만큼 편안했다.
TIFF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국제영화제다. 토론토에 정착한 뒤, 공식 상영관에서 한국 영화를 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10여 년 전의 〈밀정〉, 그다음은 〈헤어질 결심〉,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공교롭게도 최근
두 편 모두 박찬욱 감독의 영화였다.
〈어쩔 수가 없다〉는 해고 이후의 삶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스크린 속 이야기만큼이나 나 자신의 시간을 보고 있었다. 영화는 해고된 중년 남성 ‘만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어느새 낯선 타인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겹쳐 보였다. 해고 이후,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영화보다 먼저
내 일상이 던지고 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만수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 그는 다시 일하기 위해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그 선택은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남기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 만수의 해결 방식이 경쟁자를 제거하는 데 머무는 지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가 너무도 익숙하다고 느꼈다. 현실에서도 해고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경쟁은 개인 간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경쟁이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으로 전도되는 이 지점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느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재취업 현장에는 만수 혼자만 남아 있다. 자동화된 산업 현장은 이미 도래한 인공지능 시대의 예고처럼 차갑고 섬뜩하다. 상영관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백수들’에게 과연선택지는 있는가.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질문은 남았다. 선택지가 없는 삶일수록, 질문은 더 오래 붙잡아두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질문하는 시간만큼은, 백수에게 허락된 드문 특권일지도 모른다고.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질문하며 이 시간을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