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분, 그리고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못한 날
“30분 드릴게요. 짐 정리하고 나가세요.”
그 말이 핼러윈 전날, 내 토론토의 가을을 끝냈다.
해고는 그렇게 왔다.
조용했고, 무례했고, 너무도 일상적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2층에 계신 허리가 좋지 않은 거주자를 방문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 책상 앞에는 아이리시계 백인 보스가 앉아 있었다.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계약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는 통보였다.
30분 안에 짐을 정리하고 퇴근하라는 말과 함께.
나는 두 가지를 물었다.
왜 내가 해고되는가.
그리고 나의 해고가 이곳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는 첫 번째 질문에만 답했다.
Business reason. 비용 절감을 위한 layoff.
그곳은 드물게 공실률이 제로였다. 모든 스위트가 채워진 상태였다.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본다면, 적어도 ‘최악의 시점’은 아니었다.
두 번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 채 자리를 피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떠나는 것이었지, 내가 떠난 이후의 세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짐을 싸는 동안 그는 내가 조용히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반복해서 확인했다.
다른 한인 스태프, 특히 한인 어르신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까 봐 신경 쓰는 듯했다.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말라는 암묵적 메시지였다.
그 방식은 낯설지 않은 해고의 풍경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을 쏟아낸 어르신들에게 인사 한 번 드리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는 사실은,
그날의 가장 깊고도 깊은 상흔으로 남았다.
캐나다에서의 수습기간은 보통 3개월이다.
그러나 내 일의 성격상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과 조직을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고, 변화를 시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 포지션은 최소 6개월의 수습기간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날, 그 말이 떠올랐다.
Trust but verify. 믿되, 반드시 다시 확인하라.
나중에 다시 확인한 job offer에는 3개월 수습기간 내 해고가 가능하다는 문장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나는 ‘이면 합의’라 믿었던 말을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그 어떤 것도 믿지 말았어야 했다.
한인 실버타운 프로젝트를 아이리시계 백인이 총괄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나는 신선한 발상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의 “한인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들이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그 말에 너무 쉽게 설득되었다.
믿음에는 때로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잊고 있었다.
온타리오주 최초의 한인 실버타운 계획은 무너져가던 비한국인 중심 시설을 한인 시니어 입주로 채우는 프로젝트였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거주자의 70%는 유럽계 이민자, 30%는 한인이었다.
영어로 늙어가는 세계와 한국어로 늙어가는 세계.
과연 번역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번역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번역의 최전선에 나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나를 설득했었을는 지도 모른다.
두 세계의 공존은 가능할까.
공존이 쉽지 않은 것이라면, 나는 어떤 실험을 여기서 경험하게 될까.
그 질문들은 해고로 멈춘 지금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쉽게 답할 수 없다.
번역은 가능했다.
기능적인 언어의 번역이 아니라, 늙어감과 이민의 경험이 공유하는 삶의 공감대에서.
그분들의 이민 여정과 노년의 시간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는 공통의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절기로 추석에 맞춰 방문한 이민 2세 어린 학생들의 난타 공연에서,
한인 어르신들은 손주를 바라보듯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고,
유럽계 어르신들은 한국의 장단과 흥이 어린 손끝에서 나오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내가 해고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번역자로서의 내 역할이 결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세계는 섞일 수 있다”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주말을 포함해 거주자와 가족들을 만났고,
그 유대가 새로운 공동체로 확장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가 보스라 불렀던 아이리시계 캐나다인과 그를 중심으로 한 비한국인 스태프, 그리고 나를 비롯한 한인 스태프 사이의 번역은 요원했다.
번역을 이끌어야 할 리더십은 번역을 포기한 듯 보였다.
속도와 방식, 문제 해결의 태도가 달랐다.
며칠 동안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아 한인 어르신들의 불만이 커졌을 때,
나는 즉각적인 조치를 원했지만 그는 말했다.
“왜 그렇게 급하냐.”
그에게 우리는 aggressive 한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그는 지나치게 느리고 무책임한 관리자였다.
한국식 속도와 캐나다식 느림의 차이는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라, 구조와 권력의 차이였다.
캐나다식 느림은 사회복지 제도의 안정 속에서 가능한 삶의 여유라는 구조적 특권이었다.
나는 그 느림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이민자의 빠름은 그 구조에 편입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 청구서와도 같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다문화와 기회의 캐치프레이즈 뒤편에서, 이민자들은 더 빨리 일하고, 더 많이 증명해야 한다.
특히 노년의 삶을 돌보는 공간이라면, 숫자와 효율보다 삶의 자리와 관계의 윤리가 더 중요해야 한다.
그곳은 단순히 빠름과 느림의 이분법이 아니라,
사람을 숫자로 관리할 것인가, 삶으로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곳의 번역이 어려웠다면, 섞이기가 힘들었다면,
그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연관 짓는 태도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쓰레기가 며칠씩 수거되지 않아도 “왜 그렇게 급하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급함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내가 해고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그 시간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나는 그 시간을 유의미한 도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해고는 나를 멈추게 했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더 많이 이야기했고, 더 많이 웃었고,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나는 해고되었지만, 실패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 시도가 완성되기를 바란다.
그곳이 한국인과 비한국인의 이분법을 넘어 진정한 실버 공동체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멈춰야 했던 자리에서의 회복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그날의 문장을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계약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당신은 여기에도 있었다”라고.
그래서 그날의 30분은,
어쩌면 내 인생의 의미 있는 30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삼십 분은,
나를 밀어냈지만
나를 증명한 시간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