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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19. 2022

완벽보다 최선

최선을 다한 나에게 박수를!

동화 한 편을 여러 날 계속 읊조리며 외웠다. 당연히 시험도 자신 있었다. 평소 외우는 건 잘하는 편이고 연습 또한 부족함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험장 분위기는 다소 느슨했지만 시험은 늘 긴장을 동반한다. 가나다 순으로 치러진 시험인 탓에 내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시험장으로 가는 중에도 두어 번 연습을 했고 중간에 까먹는 불상사는 없었으므로.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앞으로 나가니 그때부터 살짝 긴장이 된다. 제목을 말하는데 소리가 좀 불안정한 느낌. 하지만 일단 시작되고 나니 몰입이 되어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줄줄 이어나갔다. 거의 마무리에 이르렀을 즈음 갑자가 중간에 두어줄 빼먹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갑자기 입과 머리가 멈칫. 이내 평정심을 찾고 별 무리 없이 마무리했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그때부터 병증이 도졌다.


선생님은 누누이 말씀하셨다. 60점 이상 합격이므로 100점 맞으려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원문과 똑같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이야기일 뿐. 내 머릿속은 시험 종료 후에도 잠시 멈칫했던 그 순간에 멎어있었다. 다들 잘했다고 말해도 그건 그냥 형식적인 위로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합격이라고 말하면서도 잠깐의 실수를 언급하며 이미 나를 들볶고 있었다.


차분하게 상황을 들어주던 딸은 이내 나를 다독였다. 최선을 다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면 된 것이고 분명히 잘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완벽에 집착하는 것은 아주 지독한 불치병이다. 그렇다고 평소에 그리 완벽한 성격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잣대를 높게 세워놓고 늘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무서운 병. 나태주 시인의 시구처럼 작은 성공을 슬퍼하지 말라는 것은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그 작음을 핑계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거나 나무라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 시구는 늘 너무 좋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실제 일상에서는 전혀 적용이 안 되는 슬픈 현실.


하룻밤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개운하지 않다. 말로는 내 잣대에 충족하지 않아 불만스럽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친한 지인 중의 한 사람은 본인에게는 냉철하게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또한 내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싶다. 나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지만 너무 가혹한 것 또한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이제 한고비를 또 넘었다. 10주 동안 평생 안 해 보던 종이 접기와 손유희 공부를 비롯해 동화 구연을 위한 비밀 상자와 교구들을 만들면서 새로운 배움의 시간을 경험했다. 퇴직했지만 혹시나 해서 바리스타 자격증에 컴활 공부까지 하고 있다는 선배에게 극성맞다고 지청구를 하면서 겨울쯤엔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머릿속으로 일정을 따져보고 있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또한 큰 병이다. 여전히 최선보다 완벽에 더 무게를 두며 잠 못 이루는 안쓰러운 나에게 오늘은 따듯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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