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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18. 2022

그녀를 만나면 부자가 된다

한 달만의 상봉

그녀를 못 본 지 한 달쯤 되었다. 내가 시간이 되는 날은 그녀가 바쁘고 그녀가 한가한 날은 내가 바쁘고 그런 식으로 만남이 미뤄졌던 것. 그날도 그랬다. 아침나절 엄마를 보러 가겠다며 전화를 했는데 오전에 할 일이 있으니 오후에나 오라고 하신다. 덕분에 책을 읽다가 낮잠도 자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오후 3시쯤에야 친정으로 향했다. 


집 앞에 주차하기가 무섭게 콩순이와 복실이가 반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걸음을 서둘러 대문을 밀고 들어서니 엄마 지킴이인 그녀들이 흥분해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있다. 거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방에는 반찬통이 한가득이다. 총각김치, 생채. 배추 겉절이, 명태 코다리찜까지 크고 작은 통들이 가지런하게 쌓여있다. 그녀가 딸을 늦게 오라고 한 주범들인 것이다. 오전 내내 동동거리며 김치를 담고 반찬을 만드느라 그녀는 점심도 대충 먹고 건너뛰었노라고 말하며 희미하게 웃는다. 


미안한 마음에 빨리 외출 준비를 하라고 재촉한 뒤 모처럼 그녀와 늦은 가을 나들이를 나선다. 당초 가려고 맘먹었던 수목원은 3시까지 입장 마감이라는 말에 방향을 선회해 최근에 개업한 듯 화려하고 널찍한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2층 한옥으로 지어진 카페는 늦은 오후임에도 손님들이 가득했다. 입구에는 시원한 분수가 설치되어 있고 조명시설도 화려하다. 밤에는 촛불을 밝히는지 화단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촛대도 자리하고 있다. 점심을 걸렀다는 엄마를 위해 먹음직스러운 빵까지 주문해 모처럼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인증숏도 남긴다.


오늘도 결국 그녀와 제대로 가을 나들이는 실패했지만 모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일상을 나누니 반갑고 마음이 넉넉해진다. 붕어빵 모녀답게 마주 보고 사진도 찍어 동생들과 단톡에 공유하니 모처럼 채팅방도 활기가 돈다. 조금만 시간을 내면 이렇게 소소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그리 바쁘고 정신없이 살고 있는지 그녀에게 또 한 번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시간. 


정갈한 한식집에서 이른 저녁까지 먹고 다시 친정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다시 엄마 모드로 전환.  반찬통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겉절이는 바로 냉장고에 넣고 총각김치는 내일 아침에 김치 냉장고에 넣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당신이 먹으려고 사다 놓았을 간식거리까지 다 내놓는 그녀. 고적한 그곳에서 초저녁 잠을 자고 이른 새벽에 깨어났을 때 얼마나 허허로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슴해진다.


양손 가득 반찬통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간식으로 주려던 쥐포, 번데기, 단감을 두고 갔다며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그녀. 돌아오는 주말에 다시 가겠다며 엄마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한다. 점심을 거른 탓인지 모처럼 밥 한 공기를 말끔하게 비운 그녀의 애틋한 마음과 정성 덕분에 철부지 딸은 오늘도 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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