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Nov 23. 2022

운이 좋은 편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일손 돕기를 나갔던 밭에서 울타리에 걸려 넘어졌던 날. 원체 넘어질 때 왼쪽 볼을 세게 부딪혔기에 분명히 다음날 아침에 푸른 멍이 들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붉은 정도에서 멎었고 턱 밑에 난 찰과상도 소독을 잘하고 연고를 열심히 바른 탓인지 생각보다 금세 아물었다. 이틀 뒤 행사를 앞두고 마스크를 쓰고 진행해야겠다는 맘까지 먹었는데 다행스럽게 화장으로 커버가 되어 잘 넘어갔다. 갑작스레 넘어진 일을 말할 때마다 가족들은 내가 늘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말인 즉 넘어진 곳이 흙이 퍼석한 밭이었으니 그 정도였으며 콘크리트에서 넘어졌다면 상처는 훨씬 심각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딪힌 부분이 치아가 있는 입이나 눈밑 부위가 아닌 것 또한 천운이라는 것이다. 치아가 부러졌거나 단순한 찰과상이 아니었다면 후유증 또한 컸다는 말이다. 듣고 보니 조목조목 다 맞는다. 아들 수능을 앞두고 가족여행을 떠난 지인이 우리 가족은 늘 운이 좋은 편이라고 쓴 글을 읽고 기분 좋아 읊조렸는데 그 말은 어쩌면 나에게도 전염되었던 것일까.


똑같은 상황을 겪어도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한이 없고 긍정적 시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면 또한 그 상황들은 감사할 따름이다. 가장 불행한 일은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다. 돈이 많고 승진이 빠르고 자식들이 잘되고. 겉으로 드러나는 남들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워하는 일. 나는 갖지 못한 것을 그들은 다 가진 것처럼 여기는 일. 내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들을 끊임없이 갈구하며 더 많이 갖고자 욕망하는 일. 


오늘은 모처럼 지역 아트센터에서 뮤지컬을 관람했다. 주요 줄거리만 대충 훑어봤지만 저절로 몰입한 95분. 정신의학자인 니콜라이 달이 우울증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는 과정을 담아낸 극이다. 교향곡 1번을 발표하고 혹평을 받은 그는 곡을 써야 한다는 집착에 빠지게 되고 자신이 교향곡을 꼭 쓰고 싶었던 목적까지 잃게 된다. 니콜라이 달과의 상담을 통해 결국은 자신이 꼭 교향곡을 쓰고 싶었던 이유를 찾게 된다. 


천재 음악가였던 라흐마니노프. 그에게 니콜라이 달은 "당신은 이미 사랑받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한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 회피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용기를 내 그 말을 따라 하게 되고 깊은 우울에서 벗어 나오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고 아픈 상처는 곪도록 놔두지 말고 회복될 때까지 정성을 다해 치료해야 한다. 감추거나 외면한다면 상처는 온몸을 좀 먹는 것은 물론 삶을 통째로 망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 분명히 나는 운이 좋았고 아침마다 오늘도 나에게는 운이 좋은 일만 생길 것이며 무슨 일이든 잘 될 거라고 주문을 걸며 현관문을 나선다. 이렇게 믿으며 살아도 일이 틀어지고 잘못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을 그렇게 믿으며 살 것이다. 난 퍽 운이 좋은 편이라고.

작가의 이전글 완벽보다 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