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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25. 2023

'기다렸다'는 말

동네 책방 '어쩌다 산책'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간간히 확인했다. 얼굴 한번 본 적도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 그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동네책방 이야기, 북토크 소식, 때로는 멀리 제주에서 근황을 올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책방의 얼굴이 더욱 궁금했던 터였다. 어제도 그녀는 붉디붉은 단풍나무 사진과 동네 책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남녀의 뭉클한 뒷모습과 관계인구로서 그녀의 삶에 대한 다정한 단상을 업로드했다. 이내 반가운 마음에 그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더니 그녀 또한 반가운 인사를 건네왔다. "내일 마실 나오세요. 따뜻한 커피 대접하겠습니다"라고.


대면 한번 한적 없는 이에게 건네는 뭉근한 말에 괜히 설레었다. 하지만 선뜻 댓글을 달지 못하고 '좋아요'를 누르기만 했다. 내일은 친정엄마네 김장을 하는 날이어서 온 식구가 출동하기로 한 터였기 때문이다. 네이버로 책방 위치와 운영시간만 꼼꼼히 살폈다. 언제든 한 번은 꼭 가보리라는 마음에서였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밤새 넘어져서 다친 오른발 통증 탓에 잠을 설쳐 친정에 가기 전 병원으로 갈 채비를 마친 것은 오전 9시가 넘어서였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가족들과 친정으로 향했다. 싱싱한 굴, 맛깔스러워 보이는 과메기도 한팩 사고 어묵탕에 넣을 가락국수사리, 김치통까지 사들고 도착했을 때 이미 김장은 마무리 단계였다. 아침 일찍부터 동생들과 이웃 아주머니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인 덕분이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김장하는 날에만 즐길 수 있는 갓 버무려낸 겉절이에 수육과 굴을 얹어 맛있게 먹는 일.


엄마가 챙겨준 묵직한 김장김치 두통과 겉절이를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실 오라는 그녀의 말이 마음을 살포시 간질인다. 오늘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에 책방 인근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두리번거린다. 간판은 두어 개가 있고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도 있는데 책방이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도로변 카페 뒤편에 작은 철제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으로 가는 건물에 있는 1층 카페를 지나서 뒤편 계단을 조심스레 한 계단 씩 내려간다.  책방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그녀가 환한 얼굴로 들어온다. 드디어 랜선에서만 보던 그녀와 실물 영접. 


생각보다 책방 공간이 넓다. 젊은 작가들의 신간 소설과 산문집, 동화책들도 눈에 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주방공간도 보이고 독서모임을 할 수 있는 널찍한 책상과 의자들도 놓여 있다. 오랜만에 스며드는 책내음이 반갑다. 책은 여전히 모으듯이 사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한 지가 두어 달 때쯤 되었다. 그저 많은 책들이 있는 공간에 서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시간. 그녀가 커피 메뉴를 묻더니 다시 카페로 올라간다. 그동안 소설 한 권과 산문집 한 권을 고른다. 언제 읽을지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벌써 뿌듯함이 스며든다. 


책을 구매하고 그녀와 카페로 올라와 볕이 잘 들어오는 자리에 앉는다. 선하고 밝은 그녀의 모습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인 듯 편안하다. 그녀 또한 sns를 살펴본 듯 조심스레 직장을 묻는다. 한참 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연고가 없는 지역을 오가며 지내는 그녀의 생활들이 신기하기 하다. 그녀가 건네준 커피도 최근에 마신 커피 중 가장 따듯하고 향긋하다. '책'이라는 공통화제 하나 만으로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책을 즐겨 읽는 지인들과 함께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내가 살고 있는 인근에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댓글 한 줄에 혹시 오늘 정말 그 사람이 오려나 하며 오전부터 기다렸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늘 오길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다. 실물 영접하니 너무 반가워서 호흡 곤란 올 뻔했다는 그녀의 따스함과 다정함에 더 온기가 가득 스며드는 토요일 오후. 초면인데 어색함 하나 없이 40여분 넘게 대화를 나누고 다음을 기약하며 카페를 나섰다. 오래간만에 구입한 두 권의 책 덕분에 에코백이 묵직하다. 겨울 초입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집 근처에는 '어쩌다 산책'이라는 어여쁜 동네 책방이 있다. 그리고 책과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그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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