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Nov 20. 2023

넘어지다

차마 거절하지 못해 맡은 직책이 문제였을까.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점심 식사 자리에 참석했고 시간에 쫓기듯 커피 한잔을 들고 급하게 카페 문을 나선 것이 결국 화근이 되고 말았다. 돌솥밥과 제육볶음도 맛있게 먹었고 카페에서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나설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카페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무릎이 꺾였고 그럼에도 나는 커피잔을 꽉 잡고 있었다. 문제는 일어설 때 오른쪽 발등부위가 심하게 아팠다는 것. 그럼에도 창피한 마음에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달리듯 차에 올라탔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복숭아뼈와 발등사이 부위가 살살 아파왔지만 '조금 아프다 말겠지'한 것은 단지 나의 헛된 바람이었을 뿐. 파스 두장으로 발등을 도배하고 나서 업무에 집중했지만 부어오르는 불쾌한 느낌에 이어 화장실을 가려고 오른발을 내디뎠을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바로 사무실 근처 정형외과로 향했다. 절뚝거리며 자리에 앉아 기다린 지 30여분이 훨씬 지나서야 이름을 불렀다. 넘어졌다는 말에 바로 엑스레이 촬영이 이어졌고 10여분이 지나서야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의사의 무미건조한 설명이 이어졌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인대가 늘어나 보호대 착용이 필요하고 회복되는 데는 2주 정도 걸린다는 결론이었다.


올봄 일손 돕기를 갔던 날에도 낮은 울타리를 넘다가 신발끈이 걸리면서 넘어져 얼굴에 상처가 난 적이 있었다. 창피해서 얼른 일어나 마스크를 썼고 조금 뒤 거울로 상태를 확인했을 때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왔다. 다만 바닥이 흙이었고 상처가 난 부위가 입술 쪽이 아니라 턱이었음에 안도의 숨을 쉬었을 뿐이다. 


그날도 오늘도 이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만약~ 했다면'으로 시작되는 후회들뿐. 오늘 예정대로 관외 출장을 갔다면, 밥만 먹고 카페에 가지 않았다면, 좀 더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나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먼 곳만 바라보지 않고 바로 앞쪽도 주의 깊게 살피면서 걸었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까. 당장 이번주 목요일 예정된 출판기념회는 갈 수 있을까. 금요일 오전 보고장에서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똑바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난생처음 보호대를 한 로보캅 같은 발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신기한 장면을 본 듯 마주 보고 웃는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에 너무 황당한 상황이라 그런 것이라고 답한다. 이어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가족들이 일구동성으로 나를 채근한다. 늘 너무 바쁘게 살고 있으니 여유를 갖고 좀 쉬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그 말도 틀리지는 않다. 요즘 들어 머릿속이 유난히 어수선했다.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작했던 일은 본래 목표와는 달리 의무감이 더 앞서있는 상태이고 정작 이루고 싶었던 일은 제대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약해 거절하지 못하는 병 탓에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들 만으로도 나를 옭아매기에 충분하다.


다리가 불편해진 덕분에 저녁식사 준비도 패스. 가족들이 큰 병이라도 걸린 듯 배려를 해주고 수발을 들어준다. 핑계김에 한쪽 다리는 소파 위에 올려놓고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세상 편한 자세로 저녁 시간을 보낸다. 


내일부터 당분간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최대한 안정을 취하고 냉찜질도 열심히 하고 땡퇴근 해야 할 것이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가고 싶은 곳으로 맘먹은 대로 갈 수도 없겠지만 후배 말대로 한 해 마무리 '넘어짐'으로 액땜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시인은 내가 살면서 건너온 다리는 출렁다리처럼 늘 출렁거렸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엎어지기도 한다. 다만 그런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살뿐. 나 또한 생각지 못한 일로 넘어져 감당해 내느라 애를 쓴 날이 많았다. 내 단점이 될까 봐 치부로 여겨질 까 두려워 넘어지고도 안 넘어진 척 한 날도 있고, 넘어져 상처가 나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하면서 살았던 시간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만약 그때 넘어진 김에 좀 쉬어갔으면 어땠을까. 그냥 '나 넘어져서 아파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도움을 요청했으면 안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연찮게 넘어진 어찌 보면 사소한 사건 때문에 그동안 잠자고 있던 복잡 미묘한 마음 조각들이 머릿속을 요란하게 들썩이는 날. 이제 좀 천천히, 먼 곳보다 가까운 내 주변의 삶과 사람도 자분자분 살피며 살아야 한다는 작은 진리를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배운다.

작가의 이전글 '시인'을 선물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