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하모닉 앙상블 신년음악회
햇살은 따사로운데 얼굴을 스치는 바람줄기가 매운 날, 친구와 커피를 마신 후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 10분 전이라 이미 주차장은 만차 상태였고 공연장 입구는 관람객으로 북적거린다. 공연 티켓을 수령하고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 후 바로 공연장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무대 정면이 아닌 우측 방향이지만 2 열이라 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촬영은 절대 안 된다는 안내요원의 말을 떠올리며 티켓과 프로그램 순서지를 사진으로 담고 공연을 기다린다. 내 자리 우측에는 중년 여성 한 명이 시간에 임박해 들어온다. '혼자 공연장을 다니는 것이 쉽지 않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그녀를 흘낏 쳐다본다.
오후 3시 정각이 되자 기획자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빈 필하모닉 13인의 수석, 현역 단원으로 이뤄진 공연으로 현지에서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며 국내 8개 도시를 순회 중이며, 오늘이 세 번째라는 말이 뇌리에 남는다. 드디어 단원들이 입장을 시작한다.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바순, 호른, 퍼커션까지 천천히 무대를 채우고 이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서곡 오페레타 '베네치아의 하룻밤'으로 막을 올린다. 연이어 프란츠 레하르, 로돌프 시에 친스키 등의 곡이 연주되고 한 곡 연주를 마칠 때마다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브라보를 연신 외친다.
일곱 곡의 연주를 감상한 후 15분의 휴식시간 후 연이어 아스토르 피아졸라, 조르주 비제, 요한슈트라우스 2세의 곡이 계속 울려 퍼진다. 낯선 선율들도 있지만 오페라 카르멘 모음곡, 오블리비온처럼 가끔 귀에 익는 선율이 나오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거나 발로 박자를 맞춘다. 클래식에 문외한이기도 하고 정식 음악회 경험이 없던 터라 혹시 졸음이라도 오면 어쩌나 했던 것은 기우였고 곡이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를 치는 사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공연은 행복한 막을 내렸다. 연주자들의 퇴장에 아쉬웠던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에 다시 그들이 등장했고 한국인이 너무 사랑하는 곡 '아리랑' 연주와 어설프지만 정감 있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우리말 인사로 다시 한번 감동을 선사했다. 옆자리에 자리 잡은 중년 여성은 연신 브라보를 외쳤고 감동의 여운을 전하려는 듯 기립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연주만으로도 이렇게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예술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다.
공연 내내 13명의 연주자 중 단연코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리플릿을 읽어보니 제1바이올린은 필하모닉 앙상블을 창단한 이였음에 한번 더 놀랐지만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앙코르 공연을 마치고 퇴장할 때까지 정말 연주를 즐기는 아니 사랑하는 표정을 듬뿍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을텐데 내 자리에서 얼굴표정이 가장 잘 보이는 이들은 그 두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본인의 일을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즐기면서 하고 있는 이들일까. 아니면 나처럼 그저 직업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쓸데없는 사실이 궁금해지는 시간. 하지만 난 전자에 무게를 두기로 한다. 그들은 세계 최정상급임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공자님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고.
봄이 오는 길목,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최고의 실력으로 열연을 펼치는 연주회에서 모처럼 근심걱정을 털어버리고 몰입하는 시간을 선물 받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겨울 속을 걷는 밤.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