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시죠

by 정은숙

명절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한 날 오후에 두 시간 조퇴를 내고 사무실을 나섰다. 치과 예약에 앞서 잠시 짬을 내서 정기 검진을 받던 병원으로 향했다. 항생제를 먹지 않고는 회복이 안될 증상이 내 몸에 있다는 걸 경험치로 짐작했기 때문이다. 소변검사를 하고 20여분 기다린 후 낯익은 원장님과 대면했다. 정기적인 검진으로 내 병 이력과 복용약을 알고 있는 의사가 말했다.

"건강하시죠"

"네"라고 짧게 대답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지난 5년간 애썼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맞아, 그때도 그랬지.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듯 하루하루, 아니 매 순간을 누구에게 쫓기는 듯 바쁘게 살았다. 매일 출근하고 저녁시간에는 누군가를 만나고 주말에도 일정을 만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집에 머무는 시간을 두고 가족들은 나를 '하숙생'이라고 불렀고 입병을 지병처럼 달고 사는 나에게 '건강을 챙겨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산정특례자가 되었다.


설 명절 즈음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 안이 터지고 입병이 돋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기력도 없고 피곤했다. 그렇게 설 연휴를 맞았고 '피곤하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그저 며칠 쉬면 괜찮겠지 하며 핑계김에 남편 성화에 이어가던 운동도 쉬었고 활동도 최소화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연휴라 병원을 가기도 어려운 여건을 생각하며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물을 많이 섭취하면 좋다는 말에 빨대컵을 곁에 두고 그동안 마시지 못한 물을 몰아서 마셨다. 기분 탓인지 조금 나아지는 듯 보였지만 증상은 여전했고 과다한 물 섭취 덕분에 화장실을 오가는 횟수만 늘어났다.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의 하나는 "하는 것도 없는 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라는 말이다. 그때마다 딸은 "하는 게 왜 없어. 엄마는 종일 이런저런 일을 하잖아"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내 기준에 '일'은 과연 어떤 것일까.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병에 걸린 것이. 심지어 중증질환 진단으로 일정을 대폭 줄이던 코로나 19 시국, 이젠 정말 쉬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이버 대학에 편입해 강의를 들었고 마음 안정을 위한다며 불교대학에 입학했을 정도니 아마도 보통 큰 병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지금은 그 열정을 사무실 일에 온통 쏟아붓고 있다. 휴일이나 명절, 주야간 관계없이 웬만한 행사는 절대 빠지는 일이 없고 도로변에 떨어진 휴지 한 개만 봐도 신경이 예민해질 정도에 이르렀다. 생활습관과 식습관은 흐트러졌고 내가 알고 싶지 않아도 먼저 몸이 나에게 경고장을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나니 더럭 겁이 나기 시작한다. 이미 한번의 호된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음파 검사까지 시행한 의사는 항생제 주사와 3일분 약 처방을 해주었다. 피로누적이 원인이라는 말과 함께. 오늘부터 매일 나에게 묻기로 스스로 약속한다. "지치지 않고 멀리 가려면,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지혜다"라는 데일 카네기의 말처럼 멈춰서 숨을 고를 줄 알는 사람으로 살자고. 휴식도 일이라 여기며, 매일 나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었는지 살피고, 조급한 성정에 자주 브레이크를 걸어줄 것.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보다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자꾸 나에게 얘기해 주겠다고. 오늘따라 출근하자마자 피곤해 보인다는 동료의 말과 '건강하시죠'라는 의사의 말이 자꾸 오버랩되어 귓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