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갖다 줄까"
"이것도 좋아할 거 같은데"
"이것도 좋아하겠다"
내가 카페에서 친구가 사준 단내 풀풀 나는 따끈한 군고구마를 들고 오거나 말랑하고 쫄깃한 흑임자 인절미를 얻어 왔을 때. 맛있다고 소문난 사과나 천혜향을 사 왔을 때. 입맛을 돋울 먹거리만 보면 바로 튀어나오는 남편의 말이다. 이제 이런 말들은 가족들이 놀랄 것도 없는, 아니 식상한 말이 되었다.
그 증상이 시작된 것은 두어 달 전부터다. 식당은 물론 집에서 식구들이 먹는 과일, 쿠키, 건강식품에 이르기까지 종류불문이다. 남편이 갖다주고 싶은 대상은 바로 기력이 없고 연로해 입맛이 없다는 시어머니다. 지난 해 7월 갑작스러운 고관절 수술 후 거의 6개월간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시어머니는 고령 탓인지 입맛이 없고 먹고 싶은 음식도 없다는 말을 달고 사신다. 그때마다 그 나이엔 그것이 정상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해드리지만 소용없다. 그렇다고 식사를 전혀 못하시진 않는다. 간혹 기분이 좋거나 입맛에 맞는 음식은 두 그릇 뚝딱 하시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고 나이와 오랜 병원생활 때문인지 도무지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의 백 년을 임박하는 91세의 삶, 희로애락이 무한반복 되는 시간을 살아오신 그 자체만으로도 어머니의 삶은 존경과 희생 그 자체이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되셔서 무려 칠 남매를 잘 키워내셨다. 버겁고 힘든 날마다 어머니를 웃게 해 준 사람도, 소리 없이 울게 만든 사람도 바로 그들이었으리라. 남편과 사귈 무렵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시누이가 있다는 말에 엄마는 화들짝 놀라셨지만 형제간에 우애가 좋다는 지인의 말에 안도하셨다. 물론 결혼전이나 후에도 그녀들 때문에 힘겨웠던 기억은 없다. 매번 직장 생활하는 나를 배려해 주고 이해해 주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퇴원 후 거동이 어려운 시어머니를 24시간 교대로 돌보는 사람도 다름 아닌 칠 남매들이다.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내가, 일곱이나 낳기를 참 잘했네"라고 말씀하신단다.
설 명절에 찰떡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어김없이 "엄마 좋아하겠다"라고 말했다. 혹시나 찰기가 많은 떡이 위험하실까 말렸지만 남편은 조만간 네 가지 떡 중에 가장 맛있는 떡을 골라서 엄마에게 갖다 드리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환갑이 넘은 남편은 요즘 때론 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때론 칠순이 돼 가는 자식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랑의 대명사, 어머니와 연애 중이다. 아니 점점 엄마밖에 모르는 효자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