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셔도 우리가 돌보기는 어려워요"라고 말하면 "엄청 서운해하세요"
"그럴 땐 그냥 돌본다고 말씀드려. 어차피 미래는 모르잖아"
100세 어르신을 찾아뵙고 오는 출장길, 동행한 직원이 "요즘 들어 나이 든 분들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지고 생각이 많아져요"라고 말하며 부모님과 대화 한 자락을 풀어놓는다.
관내 100세 이상 어르신은 세분이다. 그중 두 분은 요양원과 자녀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한분이 낮시간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닌다는 말에 귀가 시간에 맞춰 다녀오던 길이었다. 귀가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방안은 어둡고 썰렁했다. 인기척 하고 방에 들어갔을 때 전등이 꺼져 있었고 어르신은 침대에서 이불을 덮은 채 홀로 앉아 계셨다. 선물을 전해드리고 손을 잡았다. 차갑고 거친 손마디에는 고된 세월이 묻어있었다. 생활이 어떤지 물었더니 이내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이름을 한번 되뇐 후 할머니 집을 나선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인사하며 눈이라도 마주치면 금세 애로사항들을 털어놓는다. 단번에 쉽게 해결되는 것도 있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도 많다. 그야말로 하위 기관의 무력감을 실감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홀로 보내는 무위의 시간들의 무게가 남일 같지 않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너무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텅 빈 공간에서 어르신은 무엇을 떠올리며 온기를 채울까. 어떤 마음으로 무던히도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며 버텨내실까. 예로부터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가난과 더불어 더 어려운 일은 외로움이 아닐까.
다행스럽게 어려움을 호소한 할머니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직원의 말에 마음에 온기가 돈다. 찾아뵙기를, 형편을 여쭤본 것도 잘했다 싶어 다행스럽다. 직원의 부모님처럼 나 또한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에 서운할까 생각해 본다. 말로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지만 일말의 서운함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조금 더 잘 늙어갈 수 있도록 내 삶을 수없이 다듬고 매만질밖에. 오늘도 모두 하루씩 함께 늙어가는 모든 이들의 삶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